제목 | [문화] 성서의 세계: 상속 재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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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7 | 조회수4,065 | 추천수0 | |
성서의 세계 : 상속 재산
왕과 개인의 상속 재산
지금으로부터 2850여 년 전,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던 때의 일이다. 북부 왕국은 아합이라는 임금이 다스렸다. 이 아합이 이즈르엘이라는 성읍에 겨울 궁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그 곁에 나봇이라는 그곳 사람의 포도밭이 있었다(1열왕 21장). 임금은 그 포도밭을 왕궁 정원으로 만들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나봇을 불러 흥정을 하였다. 그 포도밭을 자기에게 넘기면 그보다 훨씬 더 좋은 포도밭을 줄 것이고, 또 달리 원하면 돈으로 셈하여 그 값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봇은 임금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대답을 한다. "제가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드리는 것은 주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충격을 받은 채 수도 사마리아로 돌아간 임금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다. 일국의 왕으로서 일개 평민에게 모욕을 받은 것이다. 아합을 괴롭히는 것은 자기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은 나봇에게 대응할 마땅한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다. 임금이라도 다른 이의 사유 재산권을 침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하지만 아합은 나봇이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그냥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것이니, 임금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두말없이 승낙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면전에다 대고 한마디로 거절을 하니, 체통이 깎일 대로 깎여서 괴로운 나머지 드러눕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외국 출신의 왕비 이세벨은 이 일을 이해하지도 용납하지도 못한다. 그는 나봇의 행동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흉악한 계략을 써서 나봇을 제거한다. 이즈르엘의 사법부를 사주하여, 나봇에게 하느님과 임금을 저주하였다는 죄를 씌워 처형하게 만든다. 법의 이름으로 무죄한 사람을 죽이는 ’사법 살인’을 자행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봇의 포도밭도 빼앗아버린다.
그렇다면 나봇은 왜 그렇게 행동하였는가? 임금의 간청을 거절할 경우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인가?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고집쟁이인가? 아니면 나봇으로서는 극히 정상적인 대답을 한 것인가? 그 대답이 어떠한 배경에서 나왔길래 임금도 아무 말을 하지 못하는가?
하느님께서 나누어주신 상속 재산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는 땅의 원소유주가 하느님이라고 생각하였다(출애 19,5; 레위 25,23; 신명 10,14). 다른 민족들이 생각하던 것처럼 임금의 소유도 아니고, 또 현재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소유도 아니다. 땅은 본디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특별히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창세 15,7; 26,3; 35,12). 그리고 그 약속을 실현하신다.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신 당신의 백성을 모세를 통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이어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하여 미리 정하신 원칙에 따라 그 땅을 이스라엘인들에게 나누어주신다. 그 원칙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주사위를 던져 인구 비례로 배당받는다는 것이다. 또 지파 안에서는 각 호주가 자기 집안의 몫을 할당받는다(민수 26,52-56).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각 지파가 사는 곳이 모두 하느님께서 직접 주셨기 때문에, 성서에는 이스라엘의 전체 영토(민수 34,1-15)와 각 지파의 영토, 그 배분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여호 13; 21장).
이렇게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 민족이, 각 지파가, 그리고 각 집안이 영원히 자기 소유로 나누어 받은 것이다(출애 32,13).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진 땅은 단순히 죽은 조상이 남긴 유산이 아니다. 대물림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살아가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상속 재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도 남의 상속 재산을 건드릴 수가 없다. 아합과 그의 왕비 이세벨은 이 법을 어겼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들을 단죄하시고(1열왕 21,17-24) 벌을 내리신다(2열왕 9,25-26.30-37).
이러한 연유로 ’임자’도 원칙적으로 자기 땅을 팔지 못한다(레위 25,23). 그러나 사정이 어려워져서 상속 재산이라도 팔아야 식구가 연명할 지경이면 그것을 팔 수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파는 이에게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것을 사들여야 한다(레위 25,25). 그렇게 하여 그 상속 재산이 작게는 문중, 크게는 지파 밖으로 떨어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민수 36,3 참조). 그렇게 할 일가붙이가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하는가? 나중에 본인에게 여력이 생기면 자기가 그것을 되살 수 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물론 실생활에서 어떠하였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원칙적으로는 희년에 그것을 되찾게 된다(레위 25,26-28). 이렇듯 개인의 상속 재산은 이중 삼중의 장치로 보호를 받았다.
재산의 상속
그러면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상속 재산을 어떻게 대물림하였는가? 그들의 상속 역시 조상 전래의 관습과 법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런데 구약성서의 율법에는 현대의 민법처럼 상속에 관한 법규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의 상속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다만 여기저기 흩어진 규정이나 이야기를 종합하여 대략의 사정을 정리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유언장을 따로 만들지 않고, 죽기 전에 그냥 말로 재산을 배분하였다(2사무 17,23; 2열왕 20,1; 집회 33,24). 이때의 원칙은 아들들에게만 재산을 나누어주고, 큰아들에게는 다른 아들들의 곱절을 준다는 것이다. 일부다처제였던 당시, 맏이가 설령 좋아하지 않는 아내의 소생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권리를 거부할 수 없었다(신명 21,15-17).
이러한 후대의 법규는 옛날에 큰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낸 아브라함(창세 21,10-14)과, 아도니야를 제치고 자기가 사랑하는 바쎄바가 낳은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준 다윗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도 된다(1열왕 1,17; 2,15). 장자가 큰 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은 인륜을 거스르는 죄를 지어 장자의 권리를 상실한다(창세 35,22; 49,4; 1역대 5,1). 그리고 어찌해 볼 수 없는 불효자로서 처형을 받는 맏아들은 당연히 아들의 권리마저 잃게 된다(신명 21,18-21).
재산에는 밭이나 포도밭과 집 같은 부동산, 그리고 가축(미가 7,14), 종(레위 25,44-46), 돈(전도 7,11-12) 등 동산이 포함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부동산도 아들들이 나누어 받았는가, 아니면 맏아들만 받았는가, 그것도 아니면 배분하지 않고 예컨대 장자의 관리 아래 공동 소유가 되었는가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아직도 모두가 수긍하는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딸만 있고 아들이 없을 때에는 딸도 상속을 받는다. 그러나 단서가 있다. 상속을 받으면 아버지의 지파에 속한 사람에게만 시집갈 수 있다. 토지는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민수 27,1-11; 36,1-12). 딸마저 없을 경우에는, 고인의 형제, 고인 아버지의 형제, 이들마저 없으면 문중에서 가장 가까운 피붙이가 상속을 받는다(민수 27,9-11).
고인의 아내 곧 과부는 원칙적으로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다. 아들들이 장성하였으면 그들이 어머니를 돌보아야 한다. 아들들이 어리면 과부가 재산을 맡아 관리한다. 아들이 없을 경우에는 친정으로 돌아가거나(창세 38,11; 레위 22,13; 룻 1,8), 수숙혼(嫂叔婚)을 하여("경향잡지" 1998년 3월호 참조) 고인의 재산과 함께 남편 가문에 남을 수 있다. 남편의 재산을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죽으면서 자기 재산을 자유롭게 나누어주었다는 유딧의 이야기는 구약성서에서 예외에 속한다. 아마도 신약성서 시대에 가까워 오면서 상속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또 과부의 권리가 점점 인정받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지고한 상속 재산을 향하여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에서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들과는 달리 자기들의 영토를 따로 할당받지 못하였다. "주님의 사제직이 그들의 상속 재산이기 때문이다"(여호 18,7). 레위인들은 아론에 이어 사제직을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처럼 땅을 부쳐 먹거나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하지 않고, 백성이 하느님께 바치는 십일조, 그리고 제물의 일부를 받아 살아간다(민수 18,20-21.23-24; 신명 18,1).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께서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신명 10,9). 다른 지파들과 그 구성원들은 저마다 자기의 몫을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받았지만, 레위인들은 이를테면 하느님을 자기들의 몫으로 받은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이를테면 ’상속 재산의 영성화’가 이루어진다. 구약성서의 신심 깊은 이들은 하느님께서 레위인들의 몫 곧 상속 재산이라는 사실을 영성적으로 이해하기에 이른다. 상속 재산은 삶의 바탕이다. 그러나 삶의 본바탕은 하느님 자신일 수밖에 없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상속 재산이 아니라 그것을 나누어주신 하느님이시다. 유한하면서도 무한을 지향하는 인간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물질에 불과한 상속 재산이, 또 덧없는 부나 명예나 권력이 될 수 없다. 결국 인간에게 절대적인 것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과의 생명 공동체, 그것 하나뿐이다. 그래서 시편의 저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저를 위하여 누가 하늘에 계시나이까? 당신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서 제가 바랄 것이 없나이다. 제 몸과 제 마음이 스러질지라도 제 마음의 반석, 제 몫은 영원히 하느님이시옵니다"(시편 73,25-26).
[경향잡지, 1999년 6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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