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와 함께한 마지막 항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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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15 | 조회수2,263 | 추천수0 | |
[성서의 세계 - 신약] 바오로와 함께한 마지막 항해
바다의 태풍
지중해를 항해했던 의사 피에트로 밤(Pietro Bamm)의 책을 읽는 사람은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들과 사람들에 대해 강한 흥미를 느낀다. 저자와 함께 해안과 항구를 신나게 항해하다 보면 그가 안내하는 도시, 땅 그리고 폐허들을 생생하게 느끼며, 부두로 돌아와야 할 때는 서글픔마저 느낀다. 다시 말해 옛날의 피에트로 밤이 그랬듯이 매혹적인 바다의 열광적인 관광객이 된다.
사도행전과 함께 고대의 바다를 항해할 때에도 똑같은 매력과 흥미를 갖는다. 여기서도 지중해를 항해했던 한 의사가 우리를 안내한다. 무엇보다도 이 의사가 포로 바오로와 함께한 마지막 항해는 상당히 생생하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기에 어느 독자든지 마치 자신이 태풍을 만나 난파를 당한 채 바다에 떠있는 듯이 흥미진진해진다.
때로는 상세한 (항해)일지를 읽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튿날 배가 시돈에 닿았을 때에 율리오는 바오로에게 친절을 베풀어 친구들을 찾아가도 좋다고 허락하였다. 바오로의 친구들은 그를 잘 돌보아주었다. 우리는 시돈을 떠나 항해하다가 역풍을 만나 키프로스 섬을 왼쪽으로 끼고 길리기아와 밤필리아 앞바다를 지나서 리키아에 있는 미라 항구에 닿았다. 거기에는 마침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가 있어서 백인대장은 우리를 그 배에 태웠다”(사도 27,3-6).
며칠 뒤 이 배는 그레데(크레타)의 남부 해안을 항해하였다. 얼마 동안 시간이 지난 뒤 항해하는 데 위험이 따랐고, 또한 속죄일도 이미 지났기 때문에 바오로는 항해를 계속하는 것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 나아가 짐과 배의 손실뿐만 아니라 사람도 위태로울 것이라고 선원들에게 경고하였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바오로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사도 27,9-11 참조).
이러한 논란은 배의 갑판에서 있었던 것 같다. 선장과 선주가 죄수인 승객과 상담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때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젠 되었다고 생각하고 닻을 올리고 그레데 해안에 바싹 붙어서 항해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섬 쪽에서 유라퀼로라는 태풍이 불어와서 배가 바람에 휘말리게 되었다. 우리는 바람을 뚫고 나갈 수가 없어서 바람이 부는 대로 배를 내맡기고 표류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7,13-15). 어쨌든 작은 배는 갑자기 큰 태풍 속에 휘말렸다. 오늘날에도 큰 배가 태풍을 만나면 불안한데 초세기에 연안을 항해하는 작은 배로서 그 정도가 어떠했겠는가?
조그만 섬을 지나면서 맹렬한 파도는 서서히 잠잠해졌고 배에 있던 승객들은 서로 격려하였다. 그들은 끌고 가던 거룻배를 간신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사도 27,16-17 참조). 그러나 배의 목재 뼈대는 결합 부분이 모두 떨어져나갔다. 그들은 ‘선체를 동여매’ 수리하려고 애썼다(사도 27,17 참조). 그래서 그들은 배 안에 실려있던 화물에 대해 협의하였다. “태풍에 몹시 시달리다 못해 이튿날에는 화물을 바닷속으로 집어던졌고 또 그 다음날에는 선원들이 배의 장비를 제 손으로 내던졌다”(사도 27,18-19).
이 묘사에서 낙담한 얼굴들과 공포를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저주를 퍼부으면서, 돛을 부러뜨린 바람 때문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희미한 등불만 있는 아래층 선실에서 다음의 내용이 기록되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로 보이지 않고 태풍만이 거세게 불어닥쳐서 마침내 우리는 살아 돌아갈 희망을 아주 잃고 말았다”(사도 27,20).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표류하기 시작한 지 열나흘째 되던 날 밤이었다. 한밤중에 선원들은 육지에 가까이 온 것 같은 짐작이 들었다. 그래서 끈에다 추를 달아 내려보았더니 물 깊이는 스무 길이었다. 좀더 나아가서 다시 재어보았더니 열다섯 길이었다”(사도 27,27-28).
모두에게 희망이 솟았다. 그러나 동시에 암초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이 때문에 ‘고물에서 네 개의 닻을 내려놓고 어서 날이 밝기를 기원하고 있었다”(사도 27,29).
어떤 이들은 몹시 긴장하였다. “선원들은 배에서 빠져나갈 속셈으로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면서 거룻배를 물에 띄웠다”(사도 27,30). 그러나 그들의 의도가 감지되어 단호히 제지되었다.
“날이 밝자 어느 땅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래밭이 있는 물굽이가 눈에 띄어 어떻게 해서든지 거기에다가 배를 대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고 키를 묶었던 밧줄을 늦추었다. 그리고 앞돛을 올려서 바람을 타고 해변 쪽으로 배를 몰았다(사도 27,39-40).
14일간 태풍 속에서 힘들게 표류한 후, 276명이 큰 불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런데 두 물살이 합치는 곳에 끼어 들어 배가 모래톱에 얹히면서 이물은 박혀 움직이지 않고 고물은 심한 물결에 깨어졌다”(사도 27,41).
“백인대장은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은 먼저 바다에 뛰어내려 육지로 올라가고 다른 사람은 판자쪽이나 부서진 뱃조각에 매달려 육지로 나가라고 명령하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모두 무사히 육지로 올라오게 되었다. 육지에 무사히 오른 우리는 그곳이 멜리데라는 섬인 것을 알았다”(사도 27,42-28,1).
이처럼 태풍에 대한 자세하고 생생한 묘사는 태풍을 겪은 이의 것이 틀림없음을 말해준다.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의 저자 자신이 직접 여행에 참가했음을 의심하면서 오히려 저자가 이미 존재하던 묘사들을 재구성했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주장은 의심없이 다음과 같다 : 사건의 이야기는 그것을 겪은 사람, 정확히 말해서 바오로의 공식 여행에 참석했던 선교사이며 의사인 루가에게 돌려야 한다고.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7년 6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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