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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영원의 도시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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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5 조회수2,720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영원의 도시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시편 l37,5)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올리브산에서) 그 도시를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하셨다”(루가 19,41-42). 그 어느 도시보다 사랑하시지만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아 구원에서 멀어지는 예루살렘, 예수님께서는 이 도시가 장차 파괴되고 말 것을 내다보시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실 수 없었던 것이다(루가 19,42-44). 지금도 올리브산에서 키드론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건너다보는 예루살렘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절경이다. 눈 아래의 공동묘지, 골짜기 건너편의 성벽과 유다인들의 옛 성전 자리에 들어선 회교 사원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의 모습은,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셨던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고고학에서는 성벽이 둘러쳐진 거주지를 도시라 부르는데, 고대의 도시도 인구의 밀집, 직업과 계층의 다양성들로 현대도시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예루살렘에는 기원전 18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성벽의 흔적이 발견된다. 예루살렘은 38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이 살아오는 도시인 것이다.

 

이러한 예루살렘은 신구약 전체에서 다른 어떤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하고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도시가 성서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브람이 약탈군을 무찌르고 포로들과 함께 돌아올 때,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마중나온 멜키세덱 이야기이다. 그는 살렘 곧 예루살렘의 임금이었다(창세 14장).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예루살렘은 조그만 도시 국가였다. 그러다가 ‘제국’을 건설한 다윗과 함께 사정이 변한다. 북부와 남부를 한데 묶은 통일왕국의 임금이 된 다윗은, 그 특출한 정치감각으로 자기의 사병들을 거느리고, 북부와 남부 사이에 있으면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수도로 정한다(2사무 5,6-10). 보잘것없던 예루살렘이 이제 시리아 ·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된다.

 

다윗은 또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일치시키는 계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다(2사무 6장). 이로써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만이 아니라, 종교의 중심지로도 도약하게 된다.

 

한 왕조와 그 수도는 운명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단 예언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약속하신다. 이로써 다윗과 함께 예루살렘도 하느님에게 선택되었다는 사상이 싹튼다. 이어 솔로몬이 왕궁과 함께 성전을 건축함으로써, 예루살렘은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러나 통일왕국은 오래가지 못하고, 930년 전후에 남북으로 갈린다. 그와 함께 예루살렘은 조그만 유다 왕국의 수도로 전락하여. 정치적 중요성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반면에 종교적 중요성은 유다의 조그만 영토를 뛰어넘어 점점 더 멀리 미치기 시작한다. 성전은 시온이라는 동산 위에 세워졌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시온이 성전을 가리키기도 하고, 예루살렘 전체를 뜻하는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이사 10,24; 예레 3,14 등). 특히 621년에 단행된 요시아 임금의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땅의 유일한 성소가 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이 머무르는 곳’으로 선택하신 성전이 있는(1열왕 11,13; 2열왕 21,4) 예루살렘은, 이제 주님께서 거처하시는 거룩한 성읍, ‘주님의 옥좌’로 불린다(예레 3,17; 요엘 4,17). 예언자들은 장차 이 예루살렘으로 모든 민족이 모여와 주님을 경배하리라고 예언한다(이사 2,2-3; 미가 4,1-3). 예루살렘이 하느님을 만나뵙는 곳, 구원이 온 세상으로 퍼져가는 곳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587년에, 적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과 성벽이 함께 파괴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이제 나라가 망하여 신바빌론 제국의 지방 도시로 전락한 예루살렘은 정치적 의미를 잃어버린다. 독립을 상실한 하느님 백성에게 예루살렘은 종교적 의미만 지니게 된다. “바빌론 강 기슭 / 거기에 앉아 / 시온을 생각하며 우노라.”로 시작하는 시편 137편 같은 구절에서 우리는 유배자들이 품었던, 그들의 가장 큰 위로며 기쁨인(6절 참조) 예루살렘을 향한 간절한 향수를 짐작할 수 있다. 결국 515년에 성전이 재건되면서, 예루살렘은 예전에 예언자들이 부여했던 종교적 의미를 온전히 되찾게 된다(이사 60-62장; 하깨 2,7-9; 즈가 14,16-19 등).

 

예루살렘의 종교적 의미, 이 도시와 관련해서 유다인들이 품은 기대는 그뒤 예수님의 탄생 때까지 몇백 년 동안, 많은 정치적 변화 속에서도 본질적으로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진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은 예루살렘이 성서의 저술과 수집과 편집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르치시고 수난을 받으시고 또 부활하신 예루살렘,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은 선약성서의 저자들에게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특히 루가 복음서의 예수님께서는 복음서 전체를 통해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신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게 된다(루가 24,47).

 

예루살렘은 마침내 정치 · 지리적, 종교 · 신학적 의미를 넘어서서, 상징과 표상이 된다. ‘지금의 예루살렘’에 대비되는 ‘하늘의 예루살렘’이 있다(갈라 4,25-26). 이 천상 예루살렘은 결국 ‘하느님의 나라’다(묵시 21,9-22,6). 지상 예루살렘이 옛날 유다인들의 종교적 고향이었듯이, 이 천상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고향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간절히 그리워했듯이(시편 137), 우리도 우리의 고향이며 목적지인 ‘새 예루살렘’을 늘 생각하며 인생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경향잡지, 1997년 2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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