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바오로 서간 해설46: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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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7-24 | 조회수3,080 | 추천수1 | |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46)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
야고보는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까닭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에 따라서 하나뿐인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쳤기 때문이라 한다. 즉,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을 실천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것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시어 마침내 하느님의 벗이라 불리는 영광을 누렸다는 것이다. 야고보와는 달리 바오로는 아브라함은 할례와 율법이 제정되기 전에 살았지만 오직 하느님을 믿는 믿음으로써 의인이 되어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로마 4, 1~5, 11). 따라서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는 것이다(로마 4, 13~25). 바오로는 로마서 4장 1~12절에서 아브라함이 의인으로 인정받은 때(창세 15, 6)가 할례받기 전(창세 17, 24)이라는 사실을 들어 아브라함은 실천(할례 받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인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같은 창세기 15장 6절을 인용하면서 바오로와 야고보는 정반대의 주장을 편 것이다. 믿음과 실천 논쟁은 1세기 그리스도 교회의 갈등 요인이 되었는데, 이 논쟁은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되어 가톨릭과 개신교의 반목으로 이어졌다. 바오로의 이와 같은 주장으로 인하여 바오로는 실천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믿음만을 강조한 사도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바오로는 자신이 쓴 편지들에서 전반부에서는 믿음을 후반부에서는 실천을 강조하였다. 바오로는 결코 믿음과 실천을 분리하지 않았다. 바오로는 사람이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결국 구원은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에 달려있는 셈이 되기 때문에 율법의 실천을 폄하한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구원)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로마9, 16).
독일 종교 혁명가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오직 성경만으로, 오직 은총만으로, 오직 믿음만으로(sola scriptura, sola gratia, sola fide) 구원받는다는 주장을 폈다. 루터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역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실천보다는 믿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올바른 신앙인은 믿음과 실천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소위 양자택일의 논리를 펴지 않고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을 이룩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떤 이가 믿음이 있다면 올바른 실천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가끔씩 주위에서 어떤 이가 믿음은 좋은데 양심이 없다는 말을 듣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믿음이 있는데 어째서 양심이 없고 거짓말을 일삼는가! 성경은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참된 양심이 있고 믿음이 없는 곳에는 양심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1티모 1, 5·19; 4, 1·2).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실천 중 어느 하나를 취사선택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실천을 이룩하는 비결을 익혀야 할 것이다. 바오로는 믿음과 실천의 묘리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 6).
세례 : 로마 6, 1~14
신약성경에서 세례라고 하면 으레 세례자 요한을 생각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례 운동을 펼침으로써 유다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었다. 그의 활약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이 세례 운동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세례자라고 불렀다.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한동안 친히 세례를 베푸셨고 베드로 안드레아와 같은 제자들이 본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초대교회가 세례를 제정했을 때 세례자 요한의 세례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9년 1월 11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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