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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기쁨이 가득한 맑고 밝은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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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2,585 추천수0

기쁨이 가득한 맑고 밝은 축제

 

 

우리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특징 가운데 한 가지로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본래 흰옷을 좋아하고 즐겨 입는 민족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순수함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민족이라고.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흰 색은 검은 색과 통한다. 흰옷은 검은 옷과 같이 입기도 한다. 장례 때나 문상을 갈 때 그렇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주로 염색하지 않은 소박한 흰옷을 입었지만, 서양에서는 검은 옷을 입었다.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장례식 때 검은 양복, 검은 드레스, 검은 모자까지 그렇게 짙은 색으로 옷을 차려 입은 것을 볼 수 있다. 요즘은 우리 나라에서도 검은 옷을 많이 입는다.

 

동서양이 이렇게 서로 다르고, 검은 색과 흰 색이 서로 다른 양극의 색이지만, 연결되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흰 색과 검은 색 모두 무채색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채색되지 않은 것, 색상과 순도가 없는 색이다. 다만 명도만 서로 다를 뿐이다. 흰 색은 가장 밝은 것이고 검은 색은 가장 어두운 것뿐이다. 색상이 없으므로 감정 표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안정된 느낌을 준다. 컬러사진보다 흑백사진이 주는 느낌이 다른 것은 이와 같은 이치인 것이다.

 

무채색! 그것도 가장 밝은 흰 색이나 가장 어두운 검은 색은 나름대로 의미를 띠고 있다. 검은 색은 색상을 내는 빛(가시광선)을 받아 반사하지 않고 모두 흡수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수렴하고 함축하는 의미를 띠고 있다. 성직자가 입는 수단이나 셔츠, 수도복 같은 옷은 검은 색으로 한다. 요즈음은 덜 검은 회색 계통의 색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반면에 흰 색은 받은 빛을 모두 반사한다. 그래서 가시광선을 다 모아놓으면 흰 색이 된다. 있는 것을 그대로 밝게 드러내고 순수하고 밝고 맑은 모습을 의미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표백한 듯이 완전한 흰 색의 옷을 기쁜 일이 있을 때 입었다. 결혼식과 같은 때 화려하고 밝은 색을 입었다. 이것은 모든 민족이 공통으로 이해하는 색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교회도 이 색을 많이 사용한다. 특히 흰 색은 가장 널리 그리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색상이다. 다섯 가지 제의 색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색이 흰 색이며, 이 색은 다른 색을 대신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특히 부활시기에 흰 색 제의를 입는다. 사순시기를 지내고 부활 성야에서부터 흰 색은 강하게 등장한다.

 

성야 예식 가운데 또 흰옷을 입는 이들이 있다. 곧 새 영세자들이다. 그들은 세례를 받을 때부터 한 주간 동안 흰옷을 입었다. 그리고 날마다 교회에 나와서 신비교육을 받았다. 흰옷을 입고 세례를 받고 한 주간 동안 날마다 기도와 성사생활을 통한 신비교육을 받음으로써, 교회 공동체는 다함께 주님 부활의 축제를 부활 대축일과 동일한 기쁨으로 경축하였다. 이것을 ‘부활 팔일 축제’라 한다.

 

그들은 입고 다녔던 흰옷을 이 기간이 끝나는 주일에 벗었고 자기의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흰옷을 벗는다 하여 그 주일을 ‘사백주일’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때 사목자가 그들에게 베푸는 마지막 권고들이 있었다. 이 관행은 4세기부터 실천하였다. 요즈음은 세례 받는 어린이들이나 첫영성체 하는 아이들이 흰옷을 입기도 한다.

 

이 한 주간은 한 해 가운데 가장 큰 축제, 주님 부활의 축제, 그리고 새 영세자들이 주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축제, 또 신자들은 자신의 세례 서약을 갱신하고 주님 구원의 보증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축제의 시기로, 이 축제의 날들 동안 교회는 온통 흰 색으로 치장되었다. 새 영세자들의 흰옷, 부활초, 제의 색, 밝게 켠 등불들, 공동체 식구들의 웃음 가득한 얼굴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좋은 일을 베풀어주셨는지 깨달아 기뻐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때였다.

 

초세기 교회에서 실천하였던, 예수 부활의 대축제와 팔일 축제 그리고 사백주일의 전통을 통해, 우리도 부활 축제를 맑고 밝은 기쁨으로 가득히 표현해 보자.

 

예수께서 부활하신 분위기는 매우 전원적이었다.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의 호숫가, 여인네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의 동산 등은 봄기운이 가득하여 만물이 새롭게 소생하는 때였다. 그래서 초세기 교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복음 선포대는 온갖 꽃과 나뭇잎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우리의 부활 축제도 서정적이고 전원적인 분위기로 표현해 보자. 그럼으로써 우리의 부활 축제가 한 해 가운데 가장 큰 축제이며, 우리 가슴에 더욱 깊이 새겨지는 축제가 되도록 해보자.

 

[경향잡지, 2001년 4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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