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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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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2,399 추천수0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

 

 

현대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날마다 수많은 사건 사고로 가득하다. 현대 사회는 그만큼 복잡하고 세분화되어 있고, 그래서 잘못되는 일도 많은 모양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의 기술이 뛰어난 오늘날의 이 시대는 더욱 그렇다. 문명이나 기술은 더 나은 삶을 위해 개발하고 발전시킨 것들이다. 결국 인간을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본말이 뒤바뀌고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을 위한 모든 것이 결국 인간을 괴롭히고 인간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오히려 인간 생명이 위협당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겼다. 이익을 위한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 자살, 인간복제와 같은 인간 생명 자체에 대한 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모두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잘못된 현실을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어떻게 지키고 키워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궁극적인 그 힘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인간을 사랑할 때에 생명을 지키고 더욱 키워나갈 수 있다. 우리는 미움과 질시가 파멸과 죽음을 가져오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사랑하면 생명이 탄생하고 그 생명에 대한 기쁨이 커지게 된다. 미움은 생명을 죽이고 사랑은 생명을 키우는 일이 된다. 새 생명에 대한 기쁨이 없고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을 갖지 못하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참 사랑일 수 없다. 단지 쾌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고 보증하셨다.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이시다. 흔히 분노하시는 하느님, 복수하시고 벌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이해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슬러 거듭 저지르는 인간의 잘못들이 얼마나 중대한 범죄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안타까움이자 호소이며 애원이 담긴 협박에 가깝다.

 

하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이시다.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이야기(루가 15,11-32)에서는 하느님의 자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렇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며 사랑이 지극하시다. 자기 자식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잘못을 보고 비록 매를 들고 꾸중을 하지만 그 속에는 애정 어린 심정으로 대하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언제나 지니고 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 마음이야 오죽하시겠는가?

 

교회는 2000년 대희년을 지냈다. 새 시대를 맞이하여 커다란 희망과 새로운 삶을 위해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마음을 깨닫고 닮도록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선포하였다. 부활 제2주일이 그 날이다.

 

본디 전통적으로 이 날은 부활 팔일 축제의 마지막 날로서, 부활 성야 때에 세례를 받았던 이들이 흰옷을 벗는 날이어서 ‘사백주일’이라 불렀다. 사백주일, 이것은 새사람으로 태어난 새 교우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새 생명을 받고 새 삶을 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날임을 의미하였다. 새 생명이 시작하는 날인 것이다.

 

이날 복음의 주제는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시다. 토마스는 불신앙으로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가 있을 때에 나타나신다. 토마스는 주님께 대한 의심과 그로 인한 잘못된 생각들을 금세 고치게 된다. 그는 용서받고 주님께 깊은 신앙을 드러낸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 고백한다. 또한 사도들은 예수께로부터 용서를 베푸는 사명을 받는다. 이렇게 용서는 자비의 실천이다.

 

우리 시대에 생명을 살리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일은 용서로부터 시작한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용서로 치유될 수 있다. 용서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용서하시는 하느님, 자비하신 하느님, 근원적으로 사랑이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은 가능하다. 잘못되고 부족하고 뒤틀린 이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닮고 배워서 용서를 베푸는 일에 적극 노력해 보자.

 

[경향잡지, 2002년 4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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