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전례2 - 구속에 갇힌 구속을 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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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01-08 | 조회수1,978 | 추천수0 | |
[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전례 2. 구속에 갇힌 '구속'을 구했다 “뚝배기보다 장맛.”
-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 개혁 후 미사전례는 교회인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성이 강조됐다. 또 평신도들의 참여가 확대되면서 자발성이 더욱 강조됐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지역 교회 상황에 맞게 각종 전례서들의 개정이 잇따랐다. 사진은 오늘날의 유아세례식 모습.
지도층의 형식에 매달린 논쟁 탓에 실체를 들여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대다수 민중들은 18세기에 이르러 외부로부터 들어온 천주교라는 낯선 정신세계로 인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내용물을 담아낸 ‘그릇’도 그릇이지만 거기에 담긴 ‘장’마저 처음 맛보는 것이었음에도 수천년 역사를 지닌 다른 종교나 정신적 전통들을 넘어서 점차 사회의 정신적 흐름을 선도하는 위치에까지 오른 한국 교회의 저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당대의 유력한 정신체계들을 뛰어넘어 천주교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천주교만이 지닌 ‘전례’가 자리하고 있었다. 신앙 선조들에게 전례는 이전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쁜 소식’을 나누는 장이었다. 그들에게 전해진 기쁜 소식은 신분관계, 성차별, 빈부의 차 등 당시의 모든 속박에서 오는 어둠의 그늘을 거두어주는 것이었다. 전례를 통해 신자들은 자신이 ‘하늘의 시민’(필리 3, 20)이라는 신원을 확인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기에 고통마저 기꺼이 감내하고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전례로 확인할 수 있는 신앙은 자신들의 삶이요 그래서 더더욱 놓을 수 없는 끈이었기에 모진 박해 속에서도 오지로 숨어들어가 공동체를 꾸리며 훌륭한 신앙적 내용과 토대를 다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장맛보다는 뚝배기’라는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신앙의 본질마저 망각하는 모습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장’이야 어떻든 뚝배기 꾸미기에 더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급기야 신앙의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잘 꾸며놓은 뚝배기에마저도 관심을 갖지 않는 세태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기 전부터 보편교회에 문제의식으로 다가왔다. 보기 좋게 꾸민 성전이나 아름다운 전례도 감동보다는 감내하기 어려운 십자가나 지기 힘든 짐으로 다가와 신자들에겐 ‘의무’라는 구속(拘束) 외에 그리스도가 선포한 구속(救贖)은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는 최초로 공의회가 전례를 신학적 전망에서 다룬 것이고, 통속적이고 희생을 강조하는 예식주의(ritualism)로부터 전례를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례헌장을 통해 공의회는 구원업적이 교회에 의해 계속되고, 전례에서 실현된다(전례헌장 6항 참조)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특별히 공의회는 전례의 참된 ‘거룩한 전통’이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변화에 따라 늘 새롭게, 항상 적응하는 방식의 예절(전통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전해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전례 개혁 또는 발전의 필요성과 합법성이 유래하는 것이다. 교회가 모든 시대에 모든 인류를 구원으로 이끌 임무를 가진다고 할 때 그 자체로 역사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적응할 권한이 교회에 부여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모국어 사용, 전례혁명 촉발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새롭게 촉발한 전례 개혁은 3개의 주요한 단계를 거치면서 적용되었다.
그 첫 단계가 하느님 백성들에게 유익함을 뿌리로 삼은 전례헌장 36항에 근거를 둔 교회 전례의 근본적인 변화다.
“미사 또는 성사 집전 또는 전례의 다른 부분에서 드물지 않게 모국어의 사용이 백성에게 크게 유익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여지가 거기에 부여될 수 있다. 주로 독서, 권고, 어떤 기도문과 노래에서, 이 일에 관하여 다음 장들에서 낱낱이 세워지는 규범에 따라 그러할 수 있다.”(36항 2)
이러한 헌장 정신에 의해 촉발된 전례와 신앙생활 전반에 이르는 내외적 변화는 공의회가 예견한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로 인해 각 지역교회는 이전까지 라틴어로 이뤄지던 전례에서 생생한 지방어가 중심이 된 전례로 변화하게 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이어져 오던 미사곡은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인 ‘키리에(Kyrie)’만 그리스어이고 나머지는 모두 라틴어였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각 지역교회마다 자국어로 미사 성제를 거행할 수 있게 되어 가톨릭의 전례는 더욱 풍요로운 체험을 신자들에게 안겨줄 수 있게 되었다.
풍부한 신앙체험 선물
또한 ‘어머니인 교회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를 하도록 인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14항)는 정신에 따라 공의회 이전까지 성직자 중심으로 이뤄져오던 전례가 평신도가 적극적으로 함께하는 전례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사제는 물론 신자들에 대한 전례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독서도 사제 혼자 하던 것을 최대한 신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바뀌는 등 평신도 역할을 강조하여 이들의 참여를 활성화시키게 된다.
이를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보편교회 역사상 가장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례 개혁의 물꼬를 트는 공의회로 자리하게 된다.
전례 개혁의 두 번째 단계는 1969년 시작된 번역 작업과 관련한 각종 전례서의 개정과 새 전례서들의 출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는 공의회가 각 지역적 특성에 맞는 전례의 조절과 토착화의 개연성 등을 열어놓음에 따라 가능한 것이었다. 공의회 이후 전례헌장의 정신에 입각해 미사경본은 놀랄 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개정되었고 또한 다른 모든 전례 예식서들도 새롭게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례서, 기도서 개정 잇따라
교회의 미사 경본은 1970년과 1975년에 개정과 수정을 거쳤고, 세례예식서(1972), 어린이 세례예식서(1969), 견진예식서(1971), 혼인예식서(1969), 병자성사 예식서(1972), 고해성사 예식서(1973), 장례예식서(1969), 성무일도서(1970) 등이 개정되었으며 현재도 지역교회의 특성에 따른 다양한 예식서의 검토와 수정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가 지닌 독특한 특성을 담은 ‘상장례 예식서’ 발간을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그 결과 이를 통해 한 걸음 더 진전한 민족 복음화의 향기로운 과실을 나누기에 이르렀다.
전례 개혁의 세 번째 단계는 교황청 주요 부서들의 지도 아래 각 지역교회 주교회의에 맡겨진 전례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의 과정이다. 이 단계는 각 지역교회가 놓인 주?객관적 사정에 따라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들이 적지 않은데다 늘 새롭게 제기되는 현실과 부딪혀야 하기 때문에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례의 토착화를 위한 모색은 완성되지 못한 가운데 끊임없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례헌장에 나타난 명시적인 규정에 의한 전례의 변화 외에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후 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전까지 벽쪽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미사를 드리던 제대를 신자들을 향해 방향을 바꾸고 사제도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봉헌하게 된 것이다. 또한 제대 앞의 난간을 제거함으로써 신자들 속으로 다가서는 면을 보인다.
이 같은 변화는 전례의 의미에 대한 고찰과, 성경과 성전에 대한 인식의 발전과 재확인 등을 통해 성찬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면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전례 개혁은 궁극적으로 신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고 독려함으로써 신앙에 생명력을 주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각 지역교회의 주교회의가 자신들의 고유 문화유산을 이용해 전례의 많은 부분에 걸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작업을 통해 전례가 각 나라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간 우리의 현실은 전례가, 신앙인들 각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밝고 힘 있는 모습을 찾아내고 하늘의 시민으로서 신원을 찾아가는 시간과 공간이 되고 있는 지 묻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7년 3월 11일, 서상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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