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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축복 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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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5,284 추천수0

[전례 상식] 축복 예식

 

 

한국인 가운데 일천만 이상의 사람들이 스스로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몸에 밴 무속적인 경향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천주교 신자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축복 예식에 있어서 그렇다. 교회는 축복 예식이 자동적으로 복을 듬뿍 가져다 준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는 이 축복 예식을 통하여 축복에 담긴 뜻을 인간이 알아듣고 실천하라고 권고한다. 그러기에 어떤 물건이나 장소를 축복할 때에도 근본적인 축복의 대상은 언제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축복에 참여하는 이에게 올바른 마음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교회를 통하여 축복을 청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신앙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설망하지 않는 희망으로 신뢰하고 특히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재촉하는 사랑에 불타고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찾는 사람이라야 주님의 축복을 완전히 깨달을 수 있고 실제로 얻을 수 있다”(“축복 예식서”, 15항). 현행 예식서는 집의 축복도 “가족들이 없을 때 거행되어서는 안된다.”(71항)며 축복의 대상은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이 1984년에 로마 경신성이 펴낸 “축복에 관하여”(De Benedictionibus)의 내용을 소개, 분석하며 축복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이 예식서는 1986년에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현재 “축복 예식서”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1. ‘축복’이란 무엇인가?

 

예식서 서두에 나와 있는 ‘일러두기’는 축복 예식의 의미와 가치를 정식화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첫째로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실현된,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축복이 소개된다. 하느님은 온갖 축복의 원천이시다. 그분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좋게 만드신 그 만물을 축복하셨다. 때가 되자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간을 위한 최고의 축복인 외아드님을 보내시어 당신의 축복을 항구히 전해 주게 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당신의 축복을 충만하게 하셨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축복은 이렇게 세상을 위한 하느님 축복의 표징이요 성사인 선택된 백성과 맺으신 계약으로부터 출발해서 구원의 역사 안에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축복은 모든 피조물, 특히 구세사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현존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러한 하느님의 현존이 말씀의 육화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에 뒤를 이어서 교회는 성체성사의 신비로부터 자신과 세상을 위한 은총을 받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들을 위하여 거룩하게 하는 일을 실행한다.

 

그러한 성화의 직무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교회는 “그러한 여러 직무를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축복 양식을 제정하여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하느님의 보호를 요청하도록 그들을 격려하며, 거룩한 생활로 하느님의 자비를 받기에 합당하도록 촉구하며 하느님의 은혜를 받도록 기도하여, 간구하는 것이 성취되어 기쁨을 누리게 한다.”(9항)

 

축복 예식은 세상의 모든 실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구원과 그러한 구원을 현존하게 하는 매개자로서의 교회를 가시화한다. 이러한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축복 예식은 말씀의 전례와 모든 공동체의 기도를 포함하고 있다. 말씀의 전례의 목적은 “축복이 하느님 말씀의 선포에서 그 뜻과 효과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표지가 되게 하려는 데에 있다.”(21항) 교회의 기도 부분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려는”(22항) 목적을 지닌다.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기도는 축복 예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아무리 짧은 예식으로 축복 예식을 거행할지라도 이 두 요소만큼은 절대로 생략해서는 안된다고 예식서는 규정하고 있다(23항 참조). 단순한 십자 표시로도 복음의 선포와 신앙을 전달하는 표현이 되기는 하지만 말씀의 선포와 기도를 중요시하는 것은 미신을 피하고 신자들을 더 능동적인 참여로 이끌기 위해서이다(27항 참조). 그리고 축복 예식 또한 전례 행위이기에 축복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신자 공동체가 참석하는 자리에서 행함으로써 공동체의 집전임을 더 잘 드러내도록 하려는 것이 또 하나의 공동체 참여를 적극 권장하는 이유이다(16항 참조).

 

이러한 축복 예식은 결코 어느 개인을 위한 마술적인 행위와 같은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 축복 예식은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참석자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하며, 그들의 더 인간적이고 복음적인 생활로써 그들 자신의 성화를 이루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13항, 9항 참조). 이러한 목적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축복의 말마디는 무엇보다도 받은 은총에 대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세상을 짓누르는 악의 권세를 무찌르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11항 참조). 그리스도인은 축복 예식을 통하여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깨닫고 또 그것을 수행할 힘을 받는 것이다.

 

 

2. 누가 축복하는가?

 

현행 예식서는 그전의 입장과 달리 축복의 직무를 특별한 ‘권한’과 ‘효과’의 신학에 기초해 다루지 않는다. 현행 예식서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축복은 교회의 신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축복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주교, 탁덕, 부제와 시종자와 독서자 등의 수직자 그리고 남녀 평신도의 순으로 그 위치와 직책을 구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구분은 법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론적이고 사목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구분이다. 어떤 특정한 복을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꼭 교계 제도의 어떤 직무자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각 예식의 서두에 나와 있는 ‘일러두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현행 예식서는 평신도에게 가정이나 새 집, 병자를 비롯하여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의 갖가지 교통 수단의 축복도 주례할 수 있게 했다. 그 밖에도 자녀들이나 약혼자, 여행자 등의 축복도 평신도가 주례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주교나 탁덕의 주례로 행해질 때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사제나 부제가 동석하고 있다면 평신도는 주례를 그들에게 양보해야 한다”(18d항).

 

 

3. 무엇을 축복하는가?

 

“축복 예식서” 안에는 가정과 부부, 선교사의 파견을 위한 축복에서부터 식탁 축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축복 양식을 담고 있으며, 또한 감실과 수도원, 발전소와 무덤의 축복 예식도 포함하고 있다.

 

유형별로 분류해 본다면, 사람에 대한 축복과 사람이 살고 이용하는 일상적인 공간과 도구의 축복 그리고 전례 공간과 전례 용품에 대한 축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을 다시 생활 영역별로 구분한다면, 본당 생활에 관련된 축복, 가정 생활을 위한 축복, 공중 생활에 관련된 축복과 그 밖의 일반적인 축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상의 축복 예식은 하나의 말씀의 전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축복 예식은 세속적인 부와 영화를 벌어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신앙을 일깨우고 그 신앙 안에서 더욱 인간적인 생활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축복 예식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상황 안에 계신 하느님 현존의 표징이며 온갖 악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고 그리스도 공동체의 신앙을 드러내 주는 표징이다.

 

[경향잡지, 1994년 9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 본지 주간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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