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월] 예수 성심께 대한 공경과 신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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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17 | 조회수2,013 | 추천수0 | |
예수 성심께 대한 공경과 신심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다. 예수 성심을 흠숭하며 사랑하고, 기도하며 찬송하고 본받는 이 성월을 맞이하여 예수 성심께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신심을 강화하고, 예수 성심 공경과 신심생활의 참다운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예수 성심께 대한 신심의 근거는 신약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못박혀 숨을 거두실 때 “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이다. 이 증언을 하는 사람은 … 여러분도 믿게 하려고 이렇게 증언하는 것이다. … 성서의 다른 곳에는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기록도 있다”(요한 19,34-37).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모든 예언서와 복음서의 가장 위대한 정점이며 구원의 결정적 표지이다. 피는 죽음을 상징하며 물은 생명을 주고 살리는 성령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인간의 죄를 씻어줄 구세주로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본질을 나타내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의 근원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은 그분의 인성과 신원을 나타내고, 그분의 공덕으로 정화시켜 주는 생명의 원천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피와 물이 흘러나온 예수님의 심장(성심)은 모든 성사의 근원으로서 신비성을 내재하고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피와 물을 쏟으시고, 죽음으로써 인류 구원을 위한 사랑의 절정에 달하였으며, 아버지께 희생제물로 봉헌하시고 다시 그대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되돌려주셨다. 이것이야말로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 26,28)라고 최후의 만찬 때 선포하신 말씀의 근원이다.
예수 성심께 대한 공경과 신심은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의 마음을 공경하고 감사드리는 것이다. 로고스(말씀)의 육화와 양성을 가진 위격을 천주 성자로 공경하되 지극한 사랑의 성심(마음)께 대한 사랑의 응답이다. 육체의 일부인 심장(살) 자체가 공경의 대상일 수 없다. 예수님의 심장은 사랑의 마음을 뜻하며 말씀의 위격과 일치한 그리스도의 심장부로서 주님의 거룩한 사랑의 원천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리한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심장은 인류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을 상징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성 베네딕도 수도회와 시토회 수도원에서는 16세기부터 예수 성심을 공경하기 시작했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콕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현시하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나를 사랑한다면서 내 마음에 상처를 더하는고 … 내 늑방의 상처를 보라. 사랑하기에 상처받은 마음, 내 사랑의 귀중한 표를 보라. 사람들을 이처럼 사랑하는 내 마음을 보라. 네 마음을 내게 다오”(1673년 12월 27일 사도 성 요한 축일에).
세상의 차가워진 마음에 사랑의 불을 놓고, 죄로 혼탁해지고 어두워진 세상에 성화의 불을 켤 사랑의 성심을 보여주셨다. 훨훨 타오르는 사랑의 표지인 예수님의 심장 모습은 사뭇 거룩하고 엄위로웠다. 심장에 둘러있는 가시와 타오르는 불길과 십자가에서 발산하는 빛은 죄에 어두워진 우리의 수치스러운 몰골을 훤히 비추어주고 있다.
예수 성심께 대한 공경과 신심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예수님의 심오한 사랑을 깨닫고 감사드리기 위해 주님의 생애와 가르침, 특히 수난과 성체의 신비를 묵상해야 한다.
2.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애덕과 선행을 실천하며, 성심께 고통을 드린 죄를 참회하고 충실히 보속해야 한다.
3. 예수님께서 받으신 모욕을 위로하고 죄인들의 회개와 성화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4. 예수 성심께 자신과 가족을 봉헌하고 또한 봉헌된 신자답게 생활하며, 집 안에 예수 성심 성화나 성상을 모시고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아름다운 습관을 기른다.
5. 예수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하고(필립 2,5) 예수님의 삶을 자기 삶으로 하며(갈라 2,20), 예수님의 생명을 자기의 생명으로 지향하여 살아가는(필립 1,21) 것이 신심의 목적이다.
6. 우리는 각자의 능력과 소유에 따라 열성을 다하여 봉사해야 한다. “각자가 받은 은총의 선물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가지고 서로 남을 위해 봉사하십시오”(1베드 4,10).
7. 사랑만이 그리스도의 성심을 본받고 공경하는 길이다. ‘사랑, 사랑’ 말만 반복하지 말고 단 한 번이라도 사랑을 실천해야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사랑과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기도와 말로만 하는 행동 없는 사랑은 헛되고 무의미한 것이다.
현대인들은 가치관의 혼돈과 정신적 혼미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앙인마저도 자기가 하는 일과 살아가는 방식이 구원에 유익한 것인지 해가 되는 것인지를 현명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적당히 살아간다. 각계 각층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사회적 책임감이 없고 도덕성이 둔화되어 있다. 사치와 허영에 인생을 팔고, 향락주의에 빠져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IMF의 충격은 인생에 경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심은 각박해지고 살기는 어려워지며, 자기가 잘살기 위해서는 남을 해치고, 거짓말하는 것이 예사롭게 되어버렸다.
자기 자신은 불충실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보면서 자기는 현대병에 걸려 인격을 상실해 가는 사람들이 많다. 타인의 선행은 쉽게 매도하고 자기는 과장하고 미화시킨다. 남아야 어떻든 먼저 자신의 신앙생활을 바로잡아야 남을 보는 눈이 너그럽고 밝아질 것이다. 주님의 성심의 사랑은 이러한 악에 젖은 세태와 허상과 허욕을 쫓는 이들 때문에 상처와 모욕을 당하신다.
인간의 죄악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예수 성심의 피흘림을 강요할 만큼 막중하고 심각하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세상을 정화할 수 없고 죄를 씻을 수 없을 만큼 인간은 오염되어 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다. 희개하지 않고 영악해진 인간은 예수 성심의 사랑이 아니면 구원받을 방법이 없다. 그러기에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예수 성심께서는 지금도 하염없이 피를 흘리신다.
우리는 예수 성심의 사랑이 세상에 속속들이 스며들도록 기도하고 보속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사랑과 평화의 일꾼으로 살아가야 한다.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예수 성심의 사랑의 도구요 매개체가 되며, 봉사자의 영예롭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정신으로 살아야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심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 성심께 대한 신심의 근원은 “그리스도께서 지극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고 심장이 찔리어 피와 물을 쏟으심으로써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성사의 원천이 되셨고” 당신 친히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요한 7,37-38)고 말씀하신 사실에 있다.
신심의 목적은 예수 성심 대축일의 감사송과 본기도에 잘 나타나 있다. “모든 이가 구세주의 열린 성심께로 기꺼이 달려가 구원의 샘물을 퍼내고”, “사랑의 샘에서 솟아나는 은총을 언제나 가득히 받는다.” 신심의 실천으로서는 성자의 성심이 우리에게 베푸신 무한한 사랑의 은덕을 기억하고, 그 성심을 정성되이 공경함으로써 마땅한 속죄의 봉사를 드리는 것이다. 또한 “언제나 성자를 사랑하며, 이웃 형제들 가운데서도 성자를 알아보게 하여” 마침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를 본받아 그분의 제자가 되어”(마태 11,29) 그분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 성심의 사랑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분을 닮은 사람으로 나아가자.
* 조철현 비오 - 신부, 광주 가톨릭 대학교 사회교육원 원장.
[경향잡지, 1998년 6월호, 조철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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