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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4-02 | 조회수2,936 | 추천수0 | |
[전례와 생활] 미사 때 왜 신자들에게는 성혈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는 건가요?
최후만찬 때 예수께서는 당신 몸과 피를 음식으로 주시면서 먹고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첫째 서간에서 예수님의 성찬의 의미를 가르치면서 말씀대로 실천하길 권고합니다. :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 26)
따라서 미사 때마다 사제와 신자들이 성체뿐 아니라 성혈도 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빵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잔을 마시는 것도 같은 비중을 가집니다. 관심은 사실 잔을 마시는 것에 더 많아 보입니다. 성찬례가 의미하는 기쁨의 특성은 포도주를 통하여 보다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마시는 것과 피가 상징하는 이미지를 통하여 계약의 동기가 연결됩니다.
미사의 제사 성격도 성혈 영성체를 통하여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혈 영성체는 예수님의 명에 따른 성찬례의 완전한 형태에 속합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성체와 성혈 영성체를 실천하였습니다. 이 전통은 12세기 중세 중엽에 이르기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지켜왔습니다.
이렇게 충실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성체와 성혈을 영했던 교회가 왜 성체만 영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는지? 서방 전례에서 신자들의 성혈 영성체는 11세기까지는 지켜졌으나 12세기말에 이르러 성체만을 모시는 단형 영성체가 우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성혈 영성체가 사라졌습니다.
성혈 영성체의 관례가 서서히 사라진 데는 무엇보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목상의 이유와 교리상의 이유였습니다. 사실 주된 원인은 교리상의 이유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흘림으로써 중대한 과실을 범할 수 있다는 과도하고도 불안한 염려에서였습니다. 또 하나의 현실적 이유는 위생적인 이유입니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합니다. 성혈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성작에 입을 대어야 하는데 그 중 질병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으면 신종 플루와 같은 전염병도 같은 두려움을 안겨줄 것입니다.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신자들은 오늘날 에이즈에 대한 공포에서 성작에 입 닿는 것을 꺼려합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극심한데 중세에는 미신적인 두려움이 훨씬 컸을 것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이유는 변화된 빵(성체) 안에는 온전하고 살아 계신 예수님이 당신의 피와 더불어 계신다는 중세 스콜라 신학의 인식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체 안에서도 온전하게 현존하신다는 교리입니다. 이렇게 이해한데는, 빵과 포도주라는 형상 안에 예수께서 현존하신다고 말할 때, 성체 안에는 예수님의 살만 존재하고 성혈 안에는 예수님의 피만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성체에도 온전히 예수님이 현존하시고 성혈 안에도 예수님이 온전히 계시다는 신학이 발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신학이 발전하게 됨으로써 성체만 모셔도 주님을 온전히 모시는 것이란 결론이 자연스레 나왔던 것입니다. 이와 병행하여 그리스도의 실제 현존에 대한 사상이 점점 강해지면서 주님의 거룩한 피를 흘림으로써 주님을 모독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표지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는 빵의 형상이 피의 형상보다 어울렸습니다.
15세기에 들어서자 성체와 성혈을 모시는 양형 영성체가 구원에 꼭 필요하다는 후스파 교리가 등장하였습니다. 이 교리가 이단으로 단죄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마침내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 때에 ‘평신도 성혈 영성체’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후 종교의 분열(종교개혁)시대에는 종교개혁자들의 양형 영성체 정당성 주장에 맞서 가톨릭교회의 ‘평신도의 성혈 영성체’ 금지는 보다 강화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1917년 제정된 구 교회법에 신자들은 성체만 모실 수 있다고 못 박았습니다.(구 교회법 852조)
이처럼 단형 영성체 관행이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교회 안에 원래 초세기의 관례에로 조심스레 접근을 시도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습니다. 공의회 전례헌장은 “양형 영성체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세워진 확고한 교리 원칙으로 사도좌에서 규정한 경우에 주교들의 판단에 따라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물론 평신도들에게도 허락될 수 있다.”(55항)고 선언합니다. 성찬례의 의미를 새롭게 매김한 공의회 후의 전례개혁은 신자들이 양형 영성체를 할 때 미사의 본의미가 더 잘 드러나게 된다고 천명하였습니다.(미사경본 총지침 281-282항)
몇 백 년 동안 내려온 금지를 해제시킨 이유를 미사경본 총지침은 281항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 “영성체는 성체와 성혈 양형으로 할 때에 한층 더 완전한 모습을 갖춘다. 양형 영성체로 성찬 잔치의 표지가 한층 더 완전하게 드러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주님의 피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표현되며, 성찬 잔치와 아버지 나라에서 이루어질 종말 잔치의 관계가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행 미사경본 총지침 283항은 14개 구성원에게 성혈 영성체를 허용합니다. 1970년 6월 29일에 나온 성혈 영성체에 관한 훈령은 지역 주교회의에 대폭적인 권한을 위임하였습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교구장은 세례, 견진, 혼인, 서품서원, 독서직과 시종직, 선교사 파견, 병자성사 미사나 예식 때에 성사를 받거나 서원을 하는 당사자와 대부모, 부모, 교리교사 등에게 양형 영성체를 허용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공동집전 미사, 피정, 은경축이나 금경축 미사, 새 사제 첫 미사 등에도 참석자들은 성혈을 영할 수 있습니다.
한국주교회의는 ‘전국 공용 교구사제 특별 권한’ 제6조와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80조에 명시해 놓았습니다. 교회는 이 방법이 교리나 신학에 저촉되는 문제가 없기에 실천적인 어려움이 없다면 여건이 허락하는 한 양형 영성체를 권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체성사와 관련한 대축일이나 축일들, 예를 들면 성목요일과 성체 성혈 대축일, 부활성야 미사 때는 양형 영성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특수한 경우에 드리는 미사, 예를 들면 소공동체 미사, 피정과 같은 미사 때도 양형 영성체를 권합니다.
오늘날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의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주일마다 양형 영성체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들 나라의 교회에서는 이미 종신부제와 성체분배 봉사자들의 숫자가 충분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현실적이고 실천적 이유를 해결하는 방안이 마련된다면(영성체 형식에 관한 충분한 교육과 넉넉한 숫자의 봉사자 준비) 매 주일에도 양형 영성체를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월간 빛, 2010년 1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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