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성찬례의 기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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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4-04 | 조회수3,238 | 추천수0 | |
[하느님 백성의 예배] 성찬례의 기원
오늘날 우리가 거행하고 있는 ‘성찬례(Eucharistia)’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성찬례는 주님께서 최후만찬에서 제정하신 것이고, 신약성경에서 전하는 예수님은 유다교 전통 안에서 생활하셨다. 주님께서 거행하신 최후만찬은 유다교 축일 만찬 예식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며, 축일 식사는 유다교의 식사 예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성찬례의 기원을 알아보려면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유다교의 식사 예식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유다교 식사 예식
유다교의 식사는 그저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행위였으며(신명 12,15 이하 참조), 이것이 ‘예식 식사’로 발전하였다. 이는 다음의 계명에 근거를 두고 있다.
“너희는 배불리 먹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좋은 땅 때문에 그분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신명 8,10).
모든 음식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이미 거룩한 것이다. 식사 때의 기도문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식사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찬미의 기도를 드리며 거행되어야 하는 하나의 예식이다.
유다인들은 신명 8,10의 계명에서 식사를 한 뒤 하느님께 찬미의 기도를 바칠 의무가 비롯된다고 보았으며, 그 기도문은 히브리어로 ‘비르캇 하마존’이라 불린다. 이것은 본문이 정해진 고정된 기도문이 아니라, 좋은 것을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과 그에 따른 일반적인 구조를 지키는 범위 내에서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바치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기도문을 기록하여 전하는 것 자체가 명백히 금기시되었다.
유다교 축일 만찬 예식
유다교의 예식 식사는 파스카 같은 축제일의 경우에 좀 더 성대해진다. 축일 만찬 예식은 시작 예식, 식사, 마침 예식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1) 시작 예식은 ‘킷두쉬’라 불리는 성화 예식으로 축일의 거행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킷두쉬는 다시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1.1) 먼저 창세 1,31ㄴ-2,3을 낭독하고, (1.2) 이어서 잔을 들고 하느님께 ‘찬미’ 기도를 바치며, (1.3) 그 뒤 빵을 들고 하느님께 ‘찬미’ 기도를 바친다. (2) 킷두쉬가 끝나면 가장이 빵을 쪼개어 식구들에게 나누어주고 본연의 식사가 시작된다. (3) 식사 뒤에는, 신명 8,10에 따라, 다시 잔을 들고 비르캇 하마존을 바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의 최후만찬과 오늘날의 성찬례
주님께서 거행하신 최후만찬은 유다교 파스카 축일 만찬 예식에 따른 것이다. 루카 22,14-20에 따르면 주님께서 거행하신 최후만찬은 (1) ‘잔의 예식 + 감사기도’, (2) ‘빵의 예식 + 감사기도’, (3) 만찬, (4) ‘식사 후 잔의 예식 + 감사기도’의 순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구조는 기본적으로 유다교 축일 만찬 예식과 일치하며, 차이점이라면 식사 전 잔의 예식과 빵의 예식에 동반되었던 찬미기도가 모두 감사기도로 바뀐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거행하는 성찬례는 (1) ‘빵의 예식 + 감사기도’, (2) ‘잔의 예식 + 감사기도’의 순으로 거행되며, 이는 유다교 축일 만찬 예식과 루카 복음의 보도와 많이 다르다. 이렇게 성찬례의 구조가 진화한 것은 만찬의 중심에 있었던 식사가 생략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유다교 축일 만찬 예식에서는 거기에 참석한 이들이 실제로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미사의 경우에는, 이미 2세기에 접어들면서 실제의 만찬과는 관계가 없어지면서 식사와 분리되었다. 식사 전 예식과 식사 후 예식을 분리하고 있던 본연의 식사가 없어지면서 식사 전후의 두 예식이 충돌하게 되어 (1) ‘잔의 예식 + 찬미기도’, (2) ‘빵의 예식 + 찬미기도’, (3) ‘잔의 예식 + 감사기도’가 단번에 이어졌을 것이고, 잔의 예식이 중복되니 둘 중 하나가 생략되었는데 앞의 것이 없어졌다. 그래서 (1) ‘빵의 예식 + 찬미기도’, (2) ‘잔의 예식 + 감사기도’의 구조가 되었다. 식사 전에 음식을 들고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를 드리고, 식사 후에 배불리 먹은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기도’를 바치던 것은 식사가 없어짐으로써 그 둘 사이에 구별 또한 없어졌다.
그래서 모두 ‘감사’의 기도로 통일되어 오늘날의 형태에 이르게 되니, 성찬례를 뜻하는 ‘에우카리스티아(=감사)’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다.
성찬례의 제정 요소와 신학적 토대
주님께서는 최후만찬을 거행하시고 당신을 기념하여 그것을 반복하라고 명하셨다(루카 22,19; 1코린 11,24 참조). 교회는 이 명령에 따르고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최후만찬에서 하셨던 모든 행위를 그대로 거행하려 하였으며,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요소를 성찬례의 ‘제정 요소’로 판단하였다.
주님께서는 (1) 빵을 드시고, (2) 감사를 드리시고, (3) 쪼개어, (4) 나누어주시고, (5) …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6) 잔을 드시고, (7) 감사를 드리시고, (8) 건네주시고 (9) …라고 말씀하셨다.
제정 요소에 해당하는 각각의 동작들은 미사 중 성찬 전례의 각 부분에 배당되어 있다. ‘빵과 잔을 드는 것’은 예물 준비 기도에, ‘감사를 드리는 것’은 감사기도에, ‘빵을 쪼개는 것’은 영성체 직전 빵 쪼개는 예식에, ‘빵을 나누어주고 잔을 건네주는 것’은 영성체 예식에 각각 해당된다.
성찬례에 사용된 기도문과 성경의 보도들을 살펴보면 성찬례에 담긴 신학이 드러난다. 특히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규율집인 “디다케” 9,4와 10,5에는 ‘일치’의 신학이 부각된다. 여러 개의 밀 알갱이가 빻아져 하나의 빵이 되고, 그렇게 이루어진 빵을 통해서 그것을 먹은 교회가 한데 모이고 일치하며, 이렇게 일치된 교회는 거룩해진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며, 이 구원은 이 세상 끝날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때에 이루어질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이것이 디다케의 성찬례 기도문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신학이며, 여기서 빵은 형상의 수준에서 교회의 일치를 드러내는 단일한 모형이 되고 있다.
이 일치의 신학은 바오로 사도의 서간(1코린 10,16-17)에서 더욱 발전하는데, 이제 빵은 ‘일치를 통한 구원’이라는 성사성의 영역에까지 도달하는 모형이 된다. 지금 단일한 빵을 나누어 먹는 이들은, 비록 여럿이지만 빵이 하나이듯 지금 모두 한 몸이 되며, 그렇게 일치를 이룬 이상 지금 거룩해지고, 지금 거룩해진다는 것은 지금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디다케에서는 교회가 장차 종말에 모아 들여져야 하는 것이었지만, 바오로에게 교회란 모아들여진 것 그 자체였다. 이것을 그는 간단히 ‘여럿’인 ‘우리’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으며(1코린 10,17), 이는 미사경문 가운데 “여럿인 너희를 위하여”라는 성찬 제정문의 표현을 반향한다. 주님께서는 ‘여럿인 우리’가 한 분이신 당신 몸을 모시고 그 단일한 성체 안에 일치하여 구원받게 하려고 당신의 몸과 피를 바치셨던 것이다.
* 신호철 비오 - 부산 가톨릭 대학교 교수·신부. 전례학 박사.
[경향잡지, 2010년 2월호, 신호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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