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강론] <부활제5주일 본문+해설+묵상>-김수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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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연 | 작성일2010-04-28 | 조회수2,163 | 추천수0 | |
<부활 제5주일>
제1독서
<두 사도는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4,21ㄴ-27 그 무렵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5(144),8-9.10-11.12-13ㄴ(◎ 1 참조) ◎ 저의 임금이신 주 하느님, 영원히 주님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 주님은 너그러우시고 자비하신 분,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신 분.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신 분, 그 자비 당신의 모든 조물 위에 미치도다. ◎ ○ 주님, 주님의 모든 조물이 주님을 찬송하고, 주님께 충실한 이들이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주님 나라의 영광을 말하고, 주님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사람들에게 주님의 위업과 주님 나라의 존귀한 영광을 알리나이다. 주님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주님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1,1-5ㄴ 1 나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요한 13,34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3ㄱ.34-35 31 유다가 [방에서]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요한 15,1.5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알렐루야.
해설과 묵상
제1독서(사도 14,20ㄴ-27) 해설 <사도는 교회 공동체들로 하여금 상호 긴밀한 연관을 맺게 해 주고 단결하게 해 주는 ‘종’이다>
맡은 사명을 다한다: 바오로는 첫 선교 여행을 마치고서 안티오키아로 돌아온다. 안티오키아 공동체에서 바오로는 당시 그리스 세계를 복음의 빛으로 비추기 위해 교회로부터 파견 받은 바 있다. 바오로는 특히 자기가 세워 놓은 젊은 공동체들로 하여금 자기들에게 들이닥치는 박해와 맞서도록 하고 그 교회들을 활성화하기 위해 ‘원로들’을 뽑아 세우는 데 특별히 많은 신경을 썼다. 공동체들을 단결하게 하는 데 몸 바치는 ‘종’: 나라가 다시 통일과 부흥을 이룩할 위대한 날을 기다리면서 이방인 백성들과 거리를 둔 유다인 공동체들과 달리, 바오로가 세운 공동체들은 본질적으로 이방인 백성들에게 열려 있다. 그 공동체들은 사도 바오로와 끊임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바오로는 그 공동체들로 하여금 계속 서로 접촉하고 연관을 맺도록 해 주었다. 교회 안에서 사도가 맡은 임무는 신자 공동체로 하여금 자기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다른 모든 공동체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동보조를 맞추며, 모든 사람에게 열린 자세로 동분서주하면서 온 몸과 목숨까지 바치는 충실한 ‘종’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긴밀하게 맺어져 하나로 뭉친 공동체들은 세상과 역사 한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나눔의 정의)을 전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어 하느님의 자녀들을 모아들이는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화답송(시편 145[144],8-9.10-11.12-13ㄴ[◎ 1 참조]) 해설 <저의 임금이신 주 하느님, 영원히 주님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이 시편은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가로서 하느님의 어지심과 자비로우심과 왕권을 기념한다. 시편작가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온갖 차별과 분열과 억압과 착취와 불의를 매우 못마땅해 하신다.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잘생긴 사람이 못생긴 사람을, 영리한 사람이 미련한 사람을, 힘센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유능한 사람이 무능한 사람을, 부강한 나라가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를 업신여기고 빼앗고 침략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신다. 하느님 나라는 온 인류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나라다.
제2독서(묵시 21,1-5ㄱ) 해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창조주와 더불어 벌일 혼인잔치를 기다린다>
결혼예식을 올리는 신부가 가장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바르게 살고 자비롭게 서로 용서하며 이웃의 짐을 져 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에 숨어 있을 뿐이어서 그렇지, 실상은 결혼예식을 치르려는 신부보다 훨씬 아름다우며 마침내 그 아름다움은 만천하에 밝히 드러날 것이다. 묵시록은 변화한 인류가 자기를 만들어 낸 창조주와 더불어 올리는 결정적인 결혼식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 날에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신랑이 올바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과 슬픔을 말끔히 씻어 줄 것이다. 그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신 사람들과 함께 계시면서 죽음과 슬픔 따위의 고통을 없애 주실 것이다. 그 날 인류는 영원한 젊음으로 빛날 것이며 더 이상 늙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은 또 악령을 상징하는 지옥의 용이 거처한다는 바다가 이집트 탈출 때처럼 하느님 백성의 진군 앞에 스러지고 말 것이다. 흔히 숨어계신 듯한 하느님께서 그 날에는 드러내 놓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되실 것이며, 사람은 늘 수수께끼 같고 알 수 없던 자기 본모습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복음(요한 13,31-33ㄱ.34-35) 해설 <아버지께서 부활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신 예수님은 사랑이 우리 생활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넘치기를 바라신다>
‘새로운 계명’에 대하여 언급한 이 대목은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다. 이 유언은 요한 복음서 저자가 수난 이야기 앞에 배치한 고별사의 축을 이루고 있다.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셨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께서 아버지의 생명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천상 영역에서만 살고 계시지 않으신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게 되었다. 히브리인들에게 영광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존재의 온전한 가치가 드러나게 됨을 뜻한다.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실존의 귀중함을 일깨워 준 예수께서는 당신이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사람들도 서로 극진히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사랑은 기쁨을 샘솟게 하여 더 나은 밝은 사회를 창조해 낸다.
묵상 <예수께서 받으신 영광>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영광을 받으신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묵시록에 의한 오늘 독서는 종말론적 혼인잔치에서 그리스도와 선택받은 사람들이 받게 될 결정적인 영광의 순간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서에서는 지상에서 살 동안 ‘사랑 가운데서 사랑하면서 살아가라고’ 권고하며 가르친다. 구약시대에 이미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바 있는 주님의 영광이 이제 예수님 안에서 완전하게 계시되었다. 하느님의 영광이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빛나게 된 것이다. 그분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신다.”(히브 1,3)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이 그분 얼굴 위에 빛나게 된다(2코린 4,6). 하느님의 영광은 예수님의 전 생애에 그리고 그분의 행위 속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그 영광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서 그 빛을 발산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의 ‘시간’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순종하고(14,31) 당신 목숨을 바침으로써(17,19)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다. 그래서 십자가는 당신을 봉헌하신 증표와 상징이 되었다(12,32). 그 분 옆구리에서 솟아난 물과 피는 당신이 죽음으로 얻은 풍요한 결실과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샘이 되심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부활과 승천으로써 아버지께서 천지창조 이전에 당신에게 주신(요한 17,24) 영광 안으로 들어가셨다(루카 24,26). 그리고 이 영광은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완전하게 드러날 것이다(티토 2,13).
<우리가 받을 영광>
예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들 위에 당신 영광을 빛나게 하신다. 달리 말하자면, 당신 영광은 당신처럼 살아가려는 당신 제자들 안에서 실현된다는 것이다(요한 17,10). 십자가의 제사가 아버지와 아들에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제자들 안에서다(15,8).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와 성령께서 그 영광을 이룩하신다(요한 1서 5,7). 그 영광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풍요함을 깨닫고 차지하게 된다(요한 16,14-15). 그리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겪는 수난과 고통과 죽음이 영광과 부활로 변한다(1베드 4,14). 그러므로 부활하신 분의 영광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 안에 반영되어 그들을 더욱 영광스럽게 바꾸어 간다(2코린 3,18). 그래서 신자들은 종말론적 영광을 기다리면서 살아간다. 그 영광이 완전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이 지상생활을 거치는 동안 오직 한 가지, 사랑이라는 유일한 법칙을 따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몸소 실천하여 보여 주신 새로운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제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윤리규범은, 사람은 본래 제 스스로 영광을 취할 수 없고 오직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해 주셔야만 아버지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누어 받고 직접 도와주는 몸 바침을 통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내미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늘 보여 주어야 한다.
복음해설(2)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시간, 떠나시겠다는 예수님의 예고(13,31-33) 이어서 눈앞에 들이닥친 수난의 의미에 관한 선언이 나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13,31) 예수께서는 영광스럽게 되는 일을 이미 이루어진 일로 제시하신다. 현재 순간에서 출발하여 볼 때에도 과거에 벌써 이루어져 있는 영광을 말하는 식이다. 공관복음서들에 나오는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마르 8,31; 9,31; 10,33과 병행 구절)와 똑같은 방식으로 여기에서도 주체는 사람의 아들이시다. 왜냐하면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의 인성도 영광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이 받으시는 영광은 아버지께서 받으시는 영광이 될 것이다. 12,23.28을 되새겨보면 좋다. 이 선언에 이어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32절) 왜냐하면 예수님의 생애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애였으며, 아버지께서도 몸소 아드님이 받으시는 영광을 완전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다음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승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느님은 “당신 자신 안에서” 아드님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이어서 예수께서 떠난다고 예고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33절) 여기에서 ‘찾다.’라는 동사는 7,34에서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너희가 나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두 구절에서 모두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고 말한다. 7,34의 경우에는(8,21에서 밝히는 것처럼) 죄의 죽음에서 끝나는 찾음을 다룬다. 그러나 13,33절의 경우에는 부활로 절정에 달하게 될 일시적인 찾음을 다룬다.
새로운 계명을 반포하심(13,34-35) 예수께서는 당신이 떠난다고 예고한 다음 새로운 계명을 제정해 주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34절)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의지를 밝히신다. 이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다. ‘계명’(‘엔톨레’)이라는 낱말은 임무, 명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는 새로운 계약이라는 뜻을 가리킨다.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처럼, 새로운 계약에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는다. 사랑하라는 것이 새로운 계약의 주요 골자다. 사랑하라는 그 계명의 내용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목숨을 바치기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참조. 15,13; 1요한 3,16). 다음 구절에서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35)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아끼고 섬기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시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요한의 첫째 서간은 새로운 계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한의 첫째 서간의 세 묶음에서 그 계명은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첫째 묶음(하느님은 빛이시라고 말하는 묶음)에서는 그 계명의 새로움에 대하여 말한다(1요한 2,3-11). 둘째 묶음(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아주는 하느님은 올바른 분이시라고 말하는 묶음)에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의 내용에 대하여 말한다(1요한 3,11-18). 셋째 묶음(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는 묶음)에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표양에 대하여 말한다(1요한 4,9-16; 참조.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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