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미사의 값은 얼마인가요?: 미사예물, 올바르게 알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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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8-14 | 조회수10,136 | 추천수2 | |
[전례와 생활] 미사의 값은 얼마인가요? - 미사예물, 올바르게 알기
미사예물의 역사
미사예물 제도가 언제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가 초세기부터 미사 중에 바쳤던 봉헌 예물이 그 뿌리요, 원시적 형태였다는 사실입니다. 2세기 중엽에 쓰인 유스티노의 “호교론”을 보면, 그 당시의 신자들은 미사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 외에 다른 예물들도 가지고 와서 고아, 과부, 가난한 이 등에게 나누어 주었다(제1권 67장)고 합니다. 4세기 이후에는 신자 수가 증가하고 그들이 바치는 예물도 다양해짐에 따라 봉헌 행렬 예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리하여 말씀 전례가 끝나면 신자들은 긴 행렬을 지어 가지고 온 예물들을 사제나 부제에게 바치면서 자신들의 생명도 주님께 봉헌한다는 표시를 하였습니다. 지역공동체는 이 예물들의 상당 부분을 교회 운영과 봉사자들의 생활 및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럼 이제 미사예물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볼까요?
1. 2-3세기부터 신자들이 미사 때 들고 왔으며 이에 근거하여 신자들이 봉헌자로서 성찬례 제물을 바치는 사람으로서 등장했던 신자들의 봉헌이 있어왔습니다. 교회의 살아있는 완전한 공동체 식구가 된 사람으로서 성찬례의 주체에 속한 사람(세례 받은 신자)은 자신의 예물을 가지고 와야 하는 의무와 권리를 가졌습니다. 이 말은 예비신자와 공적으로 속죄를 하는 신자들은 말씀의 전례가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성찬 전례에의 참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미사의 예물 봉헌의 관점에서 천 년대가 조금 지나는 시대까지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자신의 예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성직자들에게는 적어도 빵과 포도주가 중심이었고 신자들에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자연 식품이, 그리고 중세기에 와서는, 정확히는 9세기 이후부터 점차 돈으로 예물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2. 신심과 신학의 발전에 부응하여 여러 다른 사고들과 의향들이 예물의 봉헌과 결부되었습니다. 3세기에는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봉헌하는 성찬례적 소망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염려 그리고 성직자들의 생계를 위한 배려가 가장 중심이 되는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4세기 이후부터 동방에서는 성찬례와 신자들의 봉헌과의 연결이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봉헌은 단순히 자선으로만 이해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성찬례 제물은 사제의 일로 여겨졌습니다. 이에 반해 북아프리카 서부지역 전례에서는 사람들이 봉헌을 여전히 신자들의 제물이란 의미로 여겼습니다.
3. 서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방에서는 교부들의 시대부터 예물을 가져왔던 사람들의 이름이나 또는 봉헌하여 기억하고자 했던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주 특별한 지향을 말하는 것과 연결되었습니다. 미사 전례 안에서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예물 준비 종결 부분에 간구기도(신자들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의 이름이 적힌 서판을 읽을 때, 산 이와 죽은 이를 기억하는 전구 부분에서 그리고 로마 미사 경본의 감사기도 양식의 공동체를 위한 기도 부분들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원래 하느님 앞에 당사자를 현재화시키는데 의미를 가졌었지만 서방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동방에서는 그보다 약간 늦게 신자들의 기도로 이해하였고 더 이상 하느님 앞에 교회의 제물 공동체의 통공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의 기도에는 부재중인 사람들(교황, 주교들, 세상의 군주들), 성인들 그리고 죽은 이들이 속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교부시대에는 누구를 위하여 하느님께 예물을 바쳤던 봉헌자에게 하느님 편에서 보상이 베풀어진다는 사고가 생겨났습니다.
4.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 그러니까 6-7세기에는 서방에서도 먼저 갈리아와 스페인 그런 다음 앵글로색슨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 프랑크왕국 전례 지역에서 미사와 신자들의 봉헌과의 연결이 점점 더 옅어져갔습니다. 예물 봉헌은 이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처럼 교회와 성직자를 위한 당연한 예물로 여겼습니다. 성직자와 교회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모든 사람들(예를 들면, 빈궁한 과부들)을 위하여 사람들은 미사의 참석 의무를 이끌어 내었는데 그것도 미사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이에 상응하여 성직자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봉헌된 예물을 더 이상 우선적으로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필요에 의해 맡겨진 자산으로 보지 않고 개인적인 재산으로 여겼습니다. 신자들 편에서는 그들의 예물로써 자신의 영혼 구원 또는 죽은 이들을 위한 영혼 구원의 희망을 연결시켰습니다. 이와 더불어 개인의 특별한 소망을 위해서 미사제물의 봉헌과 은총의 효력을 내는 사제를 통한 기부에 그 효과적인 보상을 결부시켰습니다.
5. 게르만적 법적 사고방식에 뿌리를 둔 이러한 이해는 카롤링거왕조 때부터 서서히 그러면서 계속적으로 미사 안에서의 예물 봉헌을 쇠퇴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 자리에 교회나 사제에게 주는 기금으로 하는 다양한 예물들과 제사 예물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예물 제공자와 그의 원의는 미사 제물에 포함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비록 봉헌자의 예물이 미사와 전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지 않고, 봉헌자 자신은 언제나 자주 미사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예물을 바치는 사람을 여전히 함께 제물을 바치는 사람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미사를 더 이상 공동체 전체의 감사의 제사로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간청과 속죄의 제물, 미사의 ‘축복’과 ‘열매’의 관점이 보다 강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미사 안에서 그런 다음 항상 미사 밖에서 사제에게 건네어진 예물들을 통하여 그 열매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이해에서 예물 행렬은 먼저 주일의 공동체 미사로 그리고 천 년대가 지난 시대에는 몇몇의 축일들로(성탄, 부활, 성령강림, 모든 성인의 날) 그 횟수가 줄어들었고, 이 예물 봉헌 의무에 대한 의미 상실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제물 봉헌의 의무는 구약을 표본으로 십일조와 함께 첫 수확물의 봉헌과 동일하게 여겨졌으며, 봉헌물을 받는 이들이었던 성직자들은 이제 더 이상 예물을 바치지 않았고 기원미사와 죽은 이를 위한 미사의 숫자는 증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미사들은 기금 기탁자 내지는 미사예물 제공자들의 구체적인 원의를 보다 잘 배려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봉헌물의 사유화, 이를 통하여 생겨난 증가된 미사 봉헌의 숫자, 열매를 주는 원천으로서의 미사에 대한 시각과 경신례 집전자로서의 사제, 사항에 관한 대가의 뜻에서 신자들에게 기금이나 예물로써 수고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일에 대한 이해, 이 모든 것이 게르만적 법적 사고가 강하게 새겨졌던 중세 시대에 미사의 본질을 결정하였던 중요한 요소들이었습니다.
6. 중세 전성기 이후 화폐 경제가 확산되면서부터 화폐 예물과 미사 헌금이 점차적으로 다른 물적 봉헌물들을 배제시켰습니다. 동시에 이 예물들이 시모니아(성직, 성물 매매)로써 미사를 위해 사제에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 생활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위해 건네진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물론 이를 통하여 하느님을 위한 예물이란 본래의 의미는 잊혀졌습니다. 하느님을 위한 예물, 다르게 표현하면 하느님 곧 제대로부터 교회와 성직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예물이라는 의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에 활용 목적이 그 자리에 등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많은 사제들에게 탐욕적인 처신을 하게 했던 계기를 주었습니다.
7. 기금과 그 후 미사예물의 다른 특징으로 순전히 대가(세상의 재물을 위한 영적 예물)로 알아들은 미사의 의무는 다른 의미를 도외시했습니다. 기금은 그 재원이 고갈될 때까지 미사를 지내겠다는 약속이기에 처음부터 계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금은 따라서 이 의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금과는 달리 자유로이 건네진 미사예물의 특성이 그 성격이 되었습니다. 예물 제공자의 의도만이 척도가 되고 그 뜻 안에서만 미사 결실이 주어져야 했습니다. 점차 신자들은 미사 시작 전에 예물을 봉헌하는 동방 전례의 영향을 받아 미사 시작 전에도 별도의 예물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빈손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것보다 미사 전이나 중간에 예물을 바치면 하느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퍼지게 되었고, 급기야 모든 예물을 혼자서 부담하면 미사의 은혜가 더 클 것이라는 믿음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8-9세기경에는 갈리아를 선두로 하여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 일부 신자들이 미사 전에 예물을 봉헌하고 개인 지향대로 미사를 드려 달라고 청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미사예물 제도의 시작이며, 점차 이 제도가 널리 확산되어 중세 말엽(14-15세기)에는 사실상 미사 안에 정착하였습니다. 이밖에도 미사예물의 형성, 발전된 요인은 중세 중엽 이후 약화된 봉헌 행렬 예식, 사제와 수도자의 증가, 사적 미사와 기원 미사의 보편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사제가 미사를 거행하기 위한 집전 예물이 발전하였습니다. 마치 집전 예물이 없다면 사제는 미사를 지낼 의무가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한 미사에 하나의 집전 예물만 받도록 허용되었던데 비해 이 미사를 위해서는 여러 예물 지향들이 허용되었습니다. 트리엔트공의회는 미사예물에서 이윤 추구를 멀리하도록 애를 썼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상세한 지침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1625년 우르바노 7세 교황에 와서야 매 미사는 단지 하나의 미사예물만을 받을 수 있다고 결정하였습니다. 후에 본당신부가 주일과 축일에 거행하는 의무에 따른 본당 미사에 미사예물을 받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미사예물에 대해서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미사의 열매에 대한 이론을 독특한 구분법을 통해 제시함으로써 미사예물의 신학적 원칙을 새겨 놓았습니다. 둔스 스코투스(+1308)는 미사를 통한 영신적 이익을 위해 스콜라 철학적 개념과 그에 따른 이론과 실제를 정한 기본을 제시하였습니다.
그의 구분에 따르면, 미사의 열매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먼저 주례자에게 돌아가고, 그 다음으로 주례자가 통상적으로 미사예물을 받고 특별히 그 미사를 봉헌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때문에 미사를 봉헌한 사람들에게 그 열매가 돌아갑니다. 끝으로 미사의 특별한 열매는 희생 제사의 전례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돌아가는데 여기에는 보편 교회가 포함된다고 합니다. 이 특별한 미사 열매는 사제의 뜻을 통해 예물 봉헌자의 지향에 한정될 수 있고, 미사예물의 경우에는 한정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13세기부터 나타난 표현인 “미사를 준비하다, 미사를 지불한다.”라는 말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미사예물을 받는 신학 원칙으로서 오랜 세기 동안 이런 구분을 받아들여 왔습니다. 이후에 공포된 미사예물의 본질에 관한 규정과 오용 방지를 위한 결정들은 모두 여기에 그 뿌리를 가졌습니다. 그 세월은 길어서 1974년 바오로 6세 교황의 자의교서 전통의 고수(Firma in Traditione)와 1983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른 새 교회법이 나올 때까지였습니다.
미사예물은 처음부터 적잖은 부작용을 낳고 오해를 일으켰기에 교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침을 내려 이에 대한 남용을 막곤 하였습니다. 현재의 전례신학은 둔스 스코투스의 이러한 구분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욱 풍성한 열매가 제공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새 교회법과 바오로 6세는 특정한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하면 그 지향으로 인하여 어떤 은혜를 입는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미사 봉헌의 일차적인 수혜자는 교회 자신입니다. 교회는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차적인 수혜자는 미사 봉헌자들로서 그들은 영적인 마음 자세를 갖추고 성체성사에 참여하며 교회에서 일하고 봉사하기 때문에 은혜를 입습니다. 그렇더라도 예물 봉헌으로 인해 미사에서 연유하는 특별한 은혜에는 봉헌자의 지향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행 “교회법전”(945-958조)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반영하여 미사예물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새 교회법 945-958조항에서 마찬가지로 미사예물은 교회를 위한 예물로 사제의 생활과 그의 사제적 활동을 위해 예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미사예물에 대한 규정
미사예물에 관한 기본 규정은 “교회법전” 945-958조에 자세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1.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누구든지 교회가 승인한 관습에 따라 특정 지향대로 미사를 바치고 제공된 예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물을 받지 않고도 신자들, 특히 가난한 신자들의 지향대로 미사를 바쳐주길 간곡히 권장합니다.(945조)
2. 예물을 받는 사제는 그 액수에 상관없이 매번 지향대로 별도의 미사를 바쳐야 합니다.(948조) 이것은 집전 사제와 예물 제공자 사이의 계약과 같습니다.
3. 사제는 미사예물을 소속 관구나 교구에서 지정한 금액보다 더 많이 요구할 수 없습니다. 다만 미사를 지향대로 바쳐 달라며 자진하여 제공한 예물은 규정액보다 많거나 적더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952조)
4. 미사를 청한 이들의 지향대로 일 년 안에 그 미사들을 거행할 수 없다면 더 이상 미사예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953조)
이후에 발표된 교황청의 문헌들은 이들 규정을 여러 상황에 적용시켜 설명하거나 세부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991년 2월 22일 교황청 성직자성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인준을 받아 ‘거룩한 미사 지향’을 공표하였습니다. 이 교령이 나오게 된 동기는 여러 나라의 주교들이 미사예물에 관한 제반 문제에 대해 교황청에서 뚜렷한 설명과 지침을 내려 줄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은 라)항으로, “이른바 ‘합동’ 지향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거룩한 미사거행의 근거에 대한 판단을 많은 주교들이 사도좌에 요청하여 왔다. 오랜 관례에 따라 신자들이, 특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경우 개별 지향을 위한 개별미사의 거행을 명백하게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사제에게 소박한 예물을 봉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 교구의 미사예물 규정에 상응하는 만큼 미사거행을 위한 여러 예물들을 한데 모으는 것은 합법적이다. 또한 신자들이 그러한 의도로 자신들의 여러 지향과 예물을 한데 모아 단일 미사의 거행을 요청하는 것은 항상 자유롭다.”
아울러 제2조 1항의 내용 또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만일 봉헌자들이 사전에 그리고 명료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들이 바친 예물이 다른 예물과 하나로 혼합되어 단일미사를 거행하도록 자유롭게 동의한 경우, ‘합동’ 지향을 적용하여 한 대의 미사로서 그 책무를 충족시킬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해설집에 제시된 처벌 규정 중의 하나인 (다)항은 “미사 중에 미사예물 봉헌자의 지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미사의 은혜를 돈으로 매수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므로 피하여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제는 교우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를 위해서도 미사를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기도 중에는 교우이건 아니건 지정된 경우 외에는 지향하는 사람이나 단체 이름을 부르지 못합니다. 미사 시작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은 피해야 합니다. 사제는 받은 예물 가운데 미사 한 대의 예물만을 자기 것으로 하고, 그 외의 것은 원래 규정한 목적대로 보내야 합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교구에서 미사예물 공유화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교회법 952조 참조)
미사예물의 용도
신자들은 미사예물을 통하여 미사 집전 사제와 이웃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바치는 예물은 미사를 드리는 사제의 생활과 사목 활동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한 자선금으로도 쓰입니다. 물론 사제는 예물과 상관없이 모든 하느님의 백성과 세상 구원을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봉헌합니다. 그러나 사제는 하느님과 교회의 일꾼으로서 품삯을 받고(루카 10,7), 제단 봉사자로서 제단의 제물을 나눠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1코린 9,13) 따라서 신자들이 자원해서 바치는 예물의 일부를 자기 몫으로 가질 수 있으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로서 예물 제공자가 바라는 하느님의 은혜를 간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제가 진정으로 성찬과 예물의 참뜻을 안다면 미사예물을 독점하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기관이나 이웃과도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성찬례의 기본 정신은 초대 교회 공동체가 보여 주었듯이(사도 2,42-47), 가진 바를 이웃과 나눔으로써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미사예물은 세례를 받은 신자와 그리스도, 신자와 사제, 나아가 사제와 이웃과의 긴밀한 일치와 나눔의 표시입니다.
마무리
미사는 십자가의 제사를 영구히 기념하고 재현하는 성찬이자 제사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공동체의 인도자로서 그리스도의 미사를 집전하면서 완전한 제물인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지체인 신자들도 봉헌합니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79항 참조) 한편 신자들은 자신들을 봉헌한다는 마음을 외적으로 표시하는데, 그 중 한 가지는 미사 중에 공동으로 바치는 예물이고, 다른 한 가지는 미사 전에 개별적인 지향과 함께 바치는 미사예물입니다. 특히 미사예물은 신자들이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시는 그리스도와 더욱 긴밀히 결합하고, 거기서 나오는 효과를 더욱 풍성히 누리고자 하는 마음의 상징적 표시입니다. 누가 자신의 소망을 하느님 앞에 발원하고자 하면 이 소망은 기꺼이 자신의 생각과 기도뿐만 아니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무엇인가의 포기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재도 같이 결합될 것입니다. 미사가 거행되는 곳에서는 주님께서 언제나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셨던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합니다.
미사예물은 성찬례 공동체에 참여하는 지체인 신자의 헌신과 봉헌의 표현입니다. 거행의 주체로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물, 하느님을 위한 예물로 성찬례 제물을 봉헌하는 지체의 표현입니다. 예물은 사제에게 건네어집니다. 이는 사제가 거행의 주도자로서 예물 봉헌자를 대신하여 그의 이름과 뜻이 성찬례 제물에 받아들이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동시에 능동적 참여의 특별한 형태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완전한 지체만이 예물 봉헌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사의 실제적인 참여에는 예물 봉헌이 속하여 있으며 예물 행렬에서 미사의 전례적인 완전한 꼴을 갖출 수 있습니다. 예물은 교회 내지는 사제에게 직접적으로 건네지지 않고 원래의 수취자로서의 하느님,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부터 주어집니다. 미사예물은 그러므로 미사의 거행 때까지 수탁자에게 맡겨진 교회의 자산입니다.
앞에서 언급된 신학적 이해와 그에 상응하는 실천에서 아직도 여전히 미사예물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미사전’ 또는 ‘미사를 지불한다’와 같은 장사의 냄새를 풍기는 곤혹스러운 표현을 걷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응하는 기금과 자발적인 예물은 교회와 사제의 생활이라는 목적과 교회 활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예물 봉헌이라는 본래의 성찬례적 차원을 되찾는 것이 전례신학적으로 중요하고 영성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감사 제물에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기념하는 찬미는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전구나 간구를 가능하게 하며 전구의 근거를 제공하는 미사의 중요한 한 요소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사제들은 신자들이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방법으로 가난한 이들과 봉사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사시는 주님께 바친 예물로 생활한다는 이 생각은 정말 놀랄 만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내어주고 포기함으로써 미사잔치를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원의를 교회가 아는 가장 크고도 효과적인 보편지향기도에로 받아들인 사실입니다.”(발타살 피셔)
[월간빛, 2010년 8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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