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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월] 위령 성월에 대해 올바로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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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14 조회수4,135 추천수0

[위령 성월 특집] ‘위령 성월’에 대해 올바로 알자


“천상 · 연옥 · 지상 교회의 영적 유대 믿고 기도”

 

 

“성당에서는 죄가 있는 사람이 죽으면 먼저 연옥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자세히 알고 싶어 천주교 신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답변을 듣자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냥 성당에 가면 전부 다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최근 한 개신교 신자 모임 카페의 ‘이웃 종교(천주교, 불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이어 답 글에는 “앎이 없는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까요.(이모씨)”, “대신 좀 가르쳐 주시지 그랬어요.” 등의 의견이 올라와 있었다.

 

이 같은 글은 천주교 신자들의 ‘재복음화’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복음화’의 가장 중요한 영역은 신자 개개인의 재복음화다. 재복음화가 전제돼야 다른 복음화 영역도 함께 맞물려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믿기 위해 알고 이해해야 하며, 알기 위해 또한 믿어야 한다. 11월, 위령 성월을 지내며 가톨릭 신자들의 ‘재복음화’, ‘재교육’ 차원에서 위령 성월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알아본다.

 

11월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또한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 성월이다. 특별히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연옥 영혼은 죄로 손상된 주님의 공의를 완전히 보상하지 못해 정화될 수 있는 잠벌의 단련을 받아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연옥 영혼들은 스스로 정화할 힘은 없으나 세상에 있는 열심한 신자들의 기도로 큰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또한 교회는 연옥 교리에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의 교리까지 포함된다고 가르친다.

 

교회는 ‘연옥’ 교리와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를 근거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위령 성월을 지낸다.

 

 

이러한 연옥 교리는 구약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으며 유다인들도 충실히 신봉해왔다. 또한 연옥 교리에 관한 신학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는 생전에 유다교 법전 중 쓸모없는 주문을 빼버리고 그 교리 중 조작된 전습 부분을 폐기, 정화했다. 그럼에도 당시 유다인 사이의 전통적 관행인 사후 중간 장소 존재를 믿는 마음으로 죽은 이를 위한 기도 행위에 대해서는 비난하시거나 꾸짖으신 적이 전혀 없다. 꾸짖기는커녕 연옥의 존재에 대해 전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2)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에는 내세에서는 용서 받을 수 있는 죄도 있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이는 천국이나 지옥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지옥의 벌은 영벌이므로 사죄란 있을 수 없으므로 죄의 정련을 받는 연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교부들 또한 한결같이 연옥 교리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4세기의 치릴로 성인은 “우리는 별세한 교황과 주교들을 기도 중에 기념한다. 이는 지극히 성스럽고 지고한 제례를 봉헌 할 때 주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그들의 영혼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라고 했다. 4세기의 성 에프렘은 임종 당시 “죽은 뒤에 형제들이 기도하러 모이거든 부디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 죽은 자의 영혼은 산 성인의 기도로 큰 이익을 받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크리소스토모 성인도 “사도들이 지극히 거룩한 미사 중에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한 것은 실로 지당하다. 이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저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라고 말하며 연옥 교리에 대해 증언했다.

 

위령 성월은 특별히 세상을 떠난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기이다.

 

 

신앙인들이 11월 위령 성월을 보내며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를 포함한 연옥 교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위령 성월의 또 다른 신학적 근거는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한 교리다.

 

‘모든 성인의 통공’은 시작도 끝도 없으시며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은 물론 천상의 성인들 또한 교회의 지체이자 구성원임을 가르친다. 현세의 교회는 연옥 영혼들의 교회, 천국 성인들의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룬다. 따라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는 유대감으로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 우리는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천상에 있는 성인들도 우리와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선하심을 개인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안에서 더욱 풍요롭게 나눠주신다. 그래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사하는 모든 사랑과 희생의 행위는 공동체적 차원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는 단순히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의 순례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천상의 교회로 들어선 이들은 그 공덕을 잊지 않고 다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줄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신앙 교리 중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유효성을 말씀하신 연옥 교리는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이 위안은 죽음의 모든 비통을 완화하여 희망의 빛을 주며 죽은 이와의 기도를 통해 애정의 기억을 날로 새롭게 할 수 있다. 사랑의 정이 유별나던 부모 형제들을 사후에도 기도를 통해 도움으로써 연옥의 고통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신앙은 생명의 영원성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하고 다시 이별의 비애도 없고 죽음도 없는, 다만 환희와 평화만이 가득 찬 안식향에서 영원히 함께 즐길 수 있게 된다는 확고한 희망을 준다. [가톨릭신문, 2010년 11월 14일, 권선형 기자]

 

 

[위령 성월 특집 특별기고] 임종! 그 거룩하고 소중한 시간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을 듣거나 떠올리기만 해도 긴장하게 되고 우울해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소중하게 여기며 아끼고 지녔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포기 할 수밖에 없다는 상실감과 육체적으로 겪을지도 모르는 고통에 대한 불안, 그리고 죽은 후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롭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장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강조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을 가르치고 있으며 다른 이의 죽음을 통하여 내 삶을 돌이켜보고 자신의 죽음을 묵상해 보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신비와 환희라 한다면, 일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는 임종의 순간은 거룩함과 숭고함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임종의 순간만큼은 집착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어느 것 하나 욕심내지 않으며 내 몸에 붙어 있는 살과 뼈 마저도 포기하는 온전한 비움을 실천하는 거룩한 과정이다.

 

그러면 이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을 맞이하는 임종하는 이를 우리는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임종은 그저 안타까움과 충격을 참아가며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임종을 맞는 이와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그 순간 같이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임종자와 교감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성체조배실에 머물렀다 해서 주님과 함께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임종을 맞는 이는 불안 때문에 죽음을 대면할 용기를 잃거나 신앙이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가족들은 가까이 둘러 앉아 기도와 사랑의 표현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도록 이끌며 회개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여 주님 뜻에 순명하고 하느님 나라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 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려 노력하는 여정으로 마침내 죽음을 통해 부활하여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짐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 할 수 있다.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죽어서 부활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우리 신앙의 여정은 넓은 의미에서 임종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죽음에 의연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실 하느님의 의도대로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늘 어떤 마음과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 위령 성월에 함께 묵상하기를 감히 용기 내어 청해본다.

 

[가톨릭신문, 2010년 11월 14일, 김종호(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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