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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월] 순교자 성월의 의미와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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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28 조회수4,029 추천수0

[순교자성월 특집] 순교자 성월의 의미와 유래


103위중 33위가 9월에 순교...1925년 9월 '복자축일' 선포, 시성식후 순교자 성월로 개칭

 

 

한국 천주교회는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고 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103위 한국 순교성인들을 특별히 공경하고, 이작 성인품에 오르지 못한 한국교회 초기 순교자들과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무명 순교자들의 공덕을 기리는 달이다. 나아가 이들 순교자들을 통해 특별한 전구(轉求)와 은혜를 청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순교자들을 통해 이 땅에 역사하신 구원 은총에 감사드리는 달이기도 하다.

 

특히 9월 순교자 성월은 순교자들의 행적을 돌아보면서 오늘 우리의 신앙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하다. 「순교자는 그리스도교인의 씨앗이다」라는 말이 있듯 오늘 한국 교회의 뿌리가 순교자들에게 있음을 상기하고 그분들의 삶과 신앙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달이다. 즉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좀더 나은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다짐하는 「신앙쇄신의 달」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회가 순교자들을 특별치 공경함에 있어 왜 9월을 택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였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순교성인 103위 중 33위가 9월에 순교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9월 16일 성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한 것을 비롯해서 9월 22일에는 성 정하상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는 등 한국 순교자를 대표하는 이들을 포함해 가장 많은 수가 9월에 순교한 것이다.

 

 

첫 가경자 탄생도 9월

 

한국 천주교회는 일찍이 9월을 「한국 순교복자 성월」로 정하여 순교복자들을 공경해왔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는 기해·병오 박해 순교자 79위를 복자품에 올리고 9월 26일을 「한국 순교복자 축일」로 선포했다. 이에 한국 교회는 1926년 9월 26일을 제1회 한국 순교복자축일로 지냈고 해를 거듭하면서 순교선조들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를 가져왔다.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9월 순교자 성월」의 전통이 내려온 듯 하다.

 

이에 앞서 한국 순교자들을 공식적으로 공경하게 되는「가경자(可敬者) 탄생도 9월에 있었다. 교황 비오 9세는 1857년 9월 23일 한국 교회의 시복조사를 접수하는 법령을 반포함으로써 82명의 가경자가 탄생했다. 백해 속에서도 순교 선조들을 공경해 온 한국교회의 전통이 「9월 가경자 탄생」을 계기로 더욱 뿌리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아무튼 한국교회는 9월 26일 한국순교복자축일을 1974년부터는 대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1968년 병인박해 순교 24위가 복자위에 오르고 마침내 1984년 5월 6일 103위 복자가 모두 성인품에 오르자 한국 주교회의는 그해 6월 28일 상임위원회를 통해 「한국 순교자 성월」로 명칭만 바꿨다. 축일도 9월 26일에서 9월 20일로 옮겨졌으며 명칭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로 부르기로 했다.

 

 

다양한 순교자 현양 행사

 

한국 교회는 100여년에 걸쳐 순교의 피로 세워지고 다져진 교회이기에 우리는 1년 365일 순교 선조들을 기리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좀 저 그들의 영광스러운 행적을 되새기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 매년 순교자 성월을 지내고 있다. 9월이면 교구나 본당 단위로 순교자 현양미사와 함께 다양한 행사로 순교선조들을 기리는 아름다운 전통을 볼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현양을 위한 노력은 크게 교회사 연구, 성지 조성, 현양대회 등을 들 수 있으며 최근에는 제2 시성시복운동에 몇몇 교구에서 힘을 쏟고 있다.

 

한국 교회사 자체가 순교의 역사이기에 교회사 연구는 곧 순교사의 연구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중심으로 각 교구별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그 결과 순교자들의 행적이 하나 하나 그러나면서 그들에 개한 믿음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공식적인 순교자현양운동은 1939년 경성교구에서 태동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부리내리지 못하고 광복후에야 구체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으면서 서울대교구는 대대적인 현양행사를 가졌으며 「순교자현양회」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현양회는 순교지 조사, 순교자 유물 수집, 등을 추진하고 「성경직해」등의 서적과 순교자 십자가, 묵주, 성패 등을 발굴하기도 했다.

 

절두산 일대 산봉우리를 매입해 성지로 가꾸기도 했으며 순교자 현양 가두행렬을 주관하기도 했다. 1958년 대구교구에서도, 순교자현양회 대구교구지부를 결성하여 운동에 동참했다. 이후 시복추진, 교회 유적지 확보, 교회 고전 출판 등에 힘을 쏟았다.

 

각 교구에서는 순교복자들을 기념하는 복자성당을 건립하고, 순교비·기념관 건립, 유적지 확보 등의 사업을 시행하면서 순교행적을 교육하고 기도운동을 펼쳐왔다. 이렇게 하여 1984년 5월 6일 103위 성인을 모시게 되는 결실을 맺었고, 이제는 한국 교회 초기 신유박해를 전후한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현양사업의 여력을 모아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1999년 9월 5일, 신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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