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25: 보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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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03-10 | 조회수3,753 | 추천수0 | |
[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25) 보속(補贖 · satisfactio) 그리스도의 사랑 계명 실천 위한 ‘회개의 표징’
본당에서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주다 보면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들어온다. 그러면 고해성사를 행하면서 고해 사제와 고해자가 모두 소리를 높인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사제가 준 ‘보속’을 못 알아듣고 ‘무얼 하라고요!’라고 어르신들이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주님의 기도 하시라고요!’하며 같이 소리를 지르는 수밖에는 없다. 어떤 분은 조금 있다가 다시 들어와서 ‘보속이 무엇이었지요?’하고 다시 묻는 분도 있다. 그럴 때면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 고해소를 따로 만들어 마이크와 헤드폰을 설치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남녀노소 없이 고해성사를 한 사제는 보속을 준다. 이 보속에 대한 가르침이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문헌인 「회장직해」에 나오는데, 보속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위 문헌의 내용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보속에는 두 가지가 있으며 하나는 하느님이 정한 것으로 이웃이 내 죄로 인해 받은 피해를 내가 갚아야 한다. 이는 신부와 주교와 교황도 면치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돈 100만 원을 남에게 빚지고 갚지 않고 도망쳤다면 그 돈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 그 어떤 보속도 대치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고해소에서 주시는 사제의 보속으로 이것은 할 만하면 사제께 지체하지 말고 할 수 있음을 밝히고 실행한다. 많은 경우 사제의 보속이 자신이 실천하기 어려울 경우 신자들은 사제에게 보속을 바꿔달라고 청할 수 있다. 또한 보속의 실천으로 자신의 죄가 다 씻기었다고 생각하기보다 각 사람이 사제의 보속 이외에 각자 다른 보속을 정해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마음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위의 문헌에 비추어 보면 현재 우리 신자들이 보속에 대해 갖는 생각을 몇 가지 고치거나 실천해야 할 부분이 보인다.
자신이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보속, 예를 들면 사제가 새벽미사 3회를 보속으로 주었는데 본인의 직업상 새벽미사에 나오기 어려운 경우 다른 미사로 바꿔달라고 해야 한다. 이처럼 자신의 생활과 건강 그리고 기도생활의 수준에 비추어 보속의 종류와 양을 생각해 사제께 보속에 대해 상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또한, 남에게 육신적·금전적 피해를 준 것을 갚으려 노력하지 않고 그저 고해성사에서 사제가 주는 기도 보속으로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 외에도 사제가 준 보속을 다했으니 나는 완전하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죄의식에 빠질 필요는 없으나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그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성실히 그 외의 봉사와 기도로 자신이 보속을 정해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해성사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에는 통회, 고백, 보속, 사죄가 있다. 여기서 보속(補贖)은 사티스팍티오(satisfactio)이며 이는 넓은 의미로 끼친 손해의 배상(compensatio) 및 보환(restitutio)을 뜻하며 신학에서는 지은 죄를 적절한 방법으로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받기 전에 범한 죄는 세례성사로서 벌까지도 다 사하지만 세례 후에 범한 죄는 고해성사로서 사해진다. 그러나 그 죄의 벌까지도 다 사해지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지옥벌만 사해질 뿐 잠벌은 남아있게 된다. 잠벌을 연옥벌이라고도 하는 데, 이는 우리 자신이 기워 갚아야 하므로 자연히 보속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가장 큰 보속을 하신 분은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형에 처해지신 예수님이시다. 그분의 보속으로 인해서 우리는 죄에서 구원됐고 부활의 영광을 누릴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벌에 대한 것은 자신이 갚아야 한다. 교회는 세례자 요한이 외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8)라는 말씀대로 보속이 필요하다고 한다. 구약에서도 죄는 용서받았으나 벌은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아담과 하와가 은총 상태는 회복됐으나 고통과 죽음은 면치 못했고(창세 3,16-19), 모세는 불신을 용서받았으나 약속한 땅에는 못 들어갔다(민수 20,12).
교회의 전통적인 보속행위로는 자선, 금식, 기도 등이 있다. 이 행위들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재물, 몸, 영혼에 있어서 하느님 앞에 겸손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계명을 실천한다. 이러한 행위는 회개의 표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참된 회개는 죄의 보속과 생활개선과 끼친 손해의 보상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고해성사 예식서는 일러두기 6항에서 “보속의 종류와 양은 각 고해자에게 알맞은 것이라야 하며 각자가 파괴한 질서를 회복하고 앓던 병을 반대 약으로 고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벌은 참으로 죄를 고치고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같이 고해자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필립 3,13) 자신을 새로이 구원의 신비 속에 잠가버리며 미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한다.
보속을 들었다고 고해성사가 끝난 것이 아니다. 꼭 사제가 해주는 사죄경을 들으면서 삼위일체 이름이 나올 때 성호를 그어야 한다. 보속은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에 따르는 벌을 기워 갚는 것이라는 것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가톨릭신문, 2012년 3월 4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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