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상징] 거룩한 표징: 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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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1-11 | 조회수2,211 | 추천수0 | |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 거룩한 표징 : 책
인간이 글을 쓸 줄 알게 되면서부터, 특히 하느님에 관한 체험을 두루마리와 책에 기록하여 왔습니다. 그렇게 하여 책과 두루마리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또 다른 빵’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빵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마태 4,4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말씀과 책을 늘 정성을 다해 다루었습니다. 순교자에 관한 행적을 기록한 조서는 이교도 재판관에게 성경을 넘겨주어 파괴하도록 하느니 차라리 기꺼이 죽음을 택한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등장하시는 각각의 사복음서로 이루어진 복음서는 가장 거룩한 책으로 여겨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전례에서는 복음서에 장엄한 예식으로 예를 갖춥니다. 촛불을 밝혀 든 시종들이 복음서를 호위하고, 분향으로 존경을 표하고,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모두 일어서서 경청합니다. 복음의 장엄한 선포는 사제나 부제에게만 유보되어 있습니다. 부제품을 받을 때 부제는 자신에게 위임된 직무의 표지로 복음서를 건네받습니다.
새 성당 봉헌 예식 때 주교는 부제로부터 복음서를 건네받고 “하느님의 말씀이 이 집을 채우소서.”라고 외칩니다. 주교 서품식에서는 펼쳐진 복음서를 사도들의 새 후계자 머리와 어깨에 얹어 놓습니다. 이는 복음을 전파하는 데 따라오는 은총과 져야 할 막중한 책임을 상징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복음 선포는 피해갈 수 없는 직무에 속합니다. 공의회나 시노드가 개최될 때에도 회의실 가운데에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여 펼쳐진 복음서를 모셔두는 관습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그리스도의 말씀,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몸소 친히 말씀하시고 가르치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근래에 개최된 바티칸 공의회 경우에도 역시 이 관행이 그대로 존중되었습니다.
흔히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을 보고 ‘책을 먹어 치운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소개된 대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에제키엘에게 양면에 기록된 두루마리 한 장을 받아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에제 2,8-3,3 참조). 이는 에제키엘이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간직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말씀은 인간의 마음 안에 들어가 거처하시기를 원합니다. 입만이 귀에 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도 마음에게 말을 합니다.
오래된 수도원과 대성당의 도서관 또는 제의방에는 복음서, 성경, 미사경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책들은 예술적으로 조형된 글씨체와 놀라운 삽화와 제본으로 매우 돋보이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특히 미사 경본에 실려 있는 사복음서, 감사기도, 미사 전문의 문장 첫 글자와 첫 단어의 장식에 각별한 노고와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최근의 공의회 이후 이 아름다운 고서들은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한편으로 는 별다른 생각 없이 작은 책자와 종잇조각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와 독서대는 이러한 책자와 종잇조각의 받침대로 사용되면서 그 본래의 품위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이러한 처신이 성경이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상징을 포기하는 것이며, 그래서 영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간행되고 있는 성경, 독서집, 미사경본은 다시금 아름다운 글자와 세심한 장식을 통하여 중세의 필경사와 근세의 인쇄공들이 거룩한 책들을 위하여 기울인 노고를 부분적으로나마 오늘날의 상황에 맞추어 되살려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2012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일 가톨릭마산 15면, 에콘 카펠라리 주교 저, 안명옥 주교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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