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1: 전례헌장 탄생의 배경과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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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01-05 | 조회수3,367 | 추천수0 | |
[신앙의 해]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
1. 「전례헌장」 탄생의 배경과 역사
1963년 12월 4일에 반포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 이하 ‘전례헌장’)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표된 16개의 문헌 가운데서 가장 먼저 나온 결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례헌장」은 공의회 회기 중 논의를 통해 단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례헌장」이 반포되기까지 이미 그 이전에 사목현장에서부터 전례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것을 연구하고 시도하는 수도원들과 연구단체들이 있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교회는 교황 비오 5세께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570년에 공포한 「미사 경본」(Missale Romanum)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교회는 종교개혁의 공격을 물리치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으로 인한 교회의 분열에 맞서 이제 모두가 같은 예식을 사용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 때문에 교회는 모든 신자가 실제로 사용할 세부적인 라틴말 미사 예식서를 만들어 모든 말마디나 예식을 낱낱이 규정하고 획일화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세를 거치면서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간격이 외적, 내적으로 점점 멀어졌고 그것은 전례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전례가 거행되는 제단은 거룩한 공간이라 생각하여 낮은 담으로 평신도들이 있는 공간과 극명하게 구분되었고, 전례 언어인 라틴어는 신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스런 언어로 자리했습니다. 전례 중 사용되는 음악은 신자들이 따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품격이 올라갔고, 성가대는 점점 어려운 성가를 선호하며 자신들의 음악성을 드러내는 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러다 보니 평신도들은 전례가 어떻게 진행되고, 그 안에서 무엇이 이루어지며, 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 관심이 없어져 형식적으로 따라 하거나, 오히려 자신들이 알아듣기 쉽고 감성적으로 다가가기 쉬운 신심 행위에 몰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전례의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었고, 수도회가 중심이 되어 전례 개혁에 대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자들은 고대 전례와 음악의 원형을 복원하고, 신자들이 전례를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교육했습니다. 수도원에 국한되어 있던 전례 운동은 교황 비오 10세(재위 1903~1914년) 때 널리 확산할 기회를 맞았습니다. 교황 비오 10세는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종교적 삶을 쇄신시키기 위해 성무일도와 미사성제를 강조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각시켰으며,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영성체를 자주 할 것을 권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개혁 작업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1947년 교황 비오 12세는 전례 개혁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지시하여 공식적으로 전례 개혁을 장려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들은 교황 요한 23세가 1959년 공의회 개최의 계획을 선언한 다음 해에 구성된 전례준비위원회를 위한 가치 있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전례위원회에서 마련된 전례헌장의 초안은 여러 차례의 논의와 수정을 거쳐 1962년 공의회 개회에 즈음하여 모든 교부들에게 배부되었습니다. 이렇게 제안된 전례에 관한 의안은 공의회 회기 중 토의와 수정, 그리고 투표를 거쳐 마침내 1963년 12월 4일, 트리엔트 공의회의 폐회일(1563년 12월 4일)의 4백 주년 기념일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으로서 교황 바오로 6세를 위시해 교부들에 의해 서명 · 공포되었습니다. 이것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400년 동안 전례에 변화가 없었던 시대에도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계시던 성령의 입김이 무르익어 열매를 맺고 결실을 거둔 일이었습니다. 또한, 공의회가 그리스도교 역할의 본질을 현대에 새롭게 표현하려는 참다운 쇄신의 첫걸음이었습니다.
[2012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 가톨릭마산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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