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영적으로 죽은 이가 되지 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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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6-30 | 조회수7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그때에 한 율법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8,19-22).”
1)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뜻인데,
‘어디로 가시든지’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훌륭한 일’이고,
어떤 어려움이든지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는 ‘좋은 일’인데,
그는 예수님을 따를 때 겪게 될 ‘어려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라는 말씀은,
“나를 따르려면 대단히 고달픈 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입니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는 “잠시 앉아서 쉴 곳도 없다.”,
즉 안락한 생활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힘든 생활’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16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일에 포함됩니다.
여기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왜 따르는가? 그 목적과 이유는 무엇인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은 ‘온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고, 더 귀한 것입니다(마태 16,26).
그래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온 세상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을 차지하려고, 작은 것들을 모두 버리는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을 따르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오해하고서 따른다면, 금방 실망하고 떠날 것입니다.
희망이 잘못되어 있으면, ‘따르는 일’도 빗나가게 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바로 내가’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일’도 당연히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만날 수도 있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내가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강요당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원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2)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라는 말씀은, 겉으로만 보면, “가지 마라.”,
또는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지 마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지
마라.”, 즉 “세속 일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마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실 때,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루카 10,4).
이 말씀에 대해서,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가?” 라고
물을 수 있는데, 예수님 말씀은,
세속의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복음 선포를 하려고 떠난 사람은
복음 선포에만 집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라는 말씀도 같은 가르침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원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만 집중해야 하고, 세속 일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말고, 한눈팔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집에 가지 마라.”도 아니고,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지 마라.”도 아닙니다.
집에 가서도, 또 아버지의 장사를 지낼 때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고,
제자로서(신앙인으로서) 그런 일들을 수행하라는 뜻입니다.>
3) 전승에 의하면, 그 제자는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하나였던
‘필리포스’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였는데, 아마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마음이, 또는 믿음이 흔들려서,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라는 말은, 집에 ‘잠깐’ 다녀오겠다는 요청이 아니라,
예수님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고,
언제 예수님에게로 돌아오게 될지는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너는 나를 따라라.” 라는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권고’, 즉 집에 가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제자의 삶을 포기하지도 말고 중단하지도 말라는 권고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못 가게 해서, 집에 가지 못하고
억지로 예수님 곁에 남아 있다면, 그것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몸이 남아 있어도 마음이 떠나 있으면, 그것은 떠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떠나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는 분이 아닙니다.>
필리포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집에 가서,
장사를 지낸 다음에 다시 예수님에게로 돌아와,
제자로서 충실하게 예수님을 따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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