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 병자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침상에 실려 왔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상태였으나, 이웃의 도움으로 그렇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가 아니라, 그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에게 “애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2절) 하신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아들을 부르듯이 말씀하신다. 사지의 힘을 다 잃어버리고 누워있는 그가 주님 앞으로 들려왔다. 치유 받을 사람이 천사들에 의해 예수님 앞으로 옮겨졌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나 그가 죄를 지어서 병이 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4절)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따진다. 그들의 생각을 주님께서는 읽으시고 당신이 마음에 숨겨진 것들을 아시는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신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5절) 이것은 어떤 행위가 더 쉽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그러한 말을 할 수 없다. 두 가지는 모두 전능하신 하느님께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은 예수께서 이 모든 권능을 지니셨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하시고는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6절). 이 행위로써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권한과 건강을 회복시키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병자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잃었던 낙원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찬양을 드렸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과 하늘로 돌아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병자의 치유행위는 죄를 용서하는 행위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분은 영혼과 육신의 마비를 모두 고쳐주셨다.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는 주님께 우리 이웃도 함께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도 하느님을 알고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오늘의 환자와 같이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에 감사드리며, 우리도 그들과 같이 이웃의 천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