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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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04 | 조회수201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치유의 기적"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시편19,8)
이런저런 예화로 오늘 강론을 시작합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다산 어록집은 도반 사제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제가 아끼는 평전중 하나가 다산 정약용 평전입니다. 아마 5000년 한국 역사중 최고의 학자가 백성을 참으로 사랑했던 다산이며 평전의 제목도 ‘백성을 사랑한 지성’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어른이란 먼저 등을 보여주고 길을 여는 존재다. 막혔던 길이 뚫릴 때 비로소 즐거워한다.”<다산> “선비는 세상의 근심에 앞서 근심해야 하고, 세상이 다 즐거운 뒤에 즐거워해야 한다.”<주희朱熹의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이런 어른이나 선비가 진짜 어른입니다. 참으로 보고 배울 참 어른이 절실한 시절입니다. 저절로 나이 먹어 어른이 되어 가는 게 아니라, 삶의 지혜와 모범이 축적됐을 때 큰 그늘과 큰 산같은 배경의 어른이겠습니다. 어제 이민자들이 바티칸의 교황님을 만나 느낌을 말한 한마디가 평범하나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와 같았다.”
아마도 종파를 초월하여 금세기 최고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어른이 프란치스코 교황일 것입니다. 날마다 그분의 일정을 보면 얼마나 많은 분들을 만나고 또 말씀을 주시는지 참 불가사의입니다. 그대로 주 예수님을 닮은 모습입니다. 요즘 세인들 대부분의 관심은 건강일 것입니다. 얼마전 받은 어느 자매와 주고 받은 메시지입니다.
“신부님, 잘 지내시는지요? 매일 보내주는 강론이 없으면 아프신가 걱정이 되요.” “미안합니다. 착각했네요. 보낸줄 알았습니다.” “건강만 하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미사봉헌의 대부분도 건강을 기원하는 생미사입니다. 자주 회자되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인생 초년에는 공부와 싸우고, 중년에는 일과 싸우고, 노년에는 병마와 싸운다는 말마디입니다. 정말 노년을 맞이한 많은 분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병마와의 싸움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말하는 노년의 품위 유지의 우선 순서가 있으니,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입니다. 진정한 건강을 위해서 믿음 다음에 건강이어야 할 것입니다.
어른중의 어른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요, 제1독서 주인공인 아모스 예언자입니다. 주님처럼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고 희망과 꿈을 주는 빛같은 이들이 정말 어른입니다. 오늘 본기도 말씀대로 오류의 어둠속을 걷지 않고 진리의 빛속에 살아가는 빛의 자녀들이 진정 어른입니다. 새벽 산책때 마다 예수 성심상 앞에서 바치는 기도도 생각납니다.
“주님, 슬픔과 좌절이 있는 곳에 위로를 주시고, 전쟁과 불화가 있는 곳에 평화를 주시고, 아픔과 질병이 있는 곳에 치유를 주소서!”
예수님을 닮아 위로와 평화, 치유를 주는 이들이 진정 참 어른입니다. 오늘 복음은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주님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복음서의 내용도 대부분이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살려주시고 먹여주시는 모습입니다. 산상설교의 가르침 후에 주님은 온전히 하느님 나라 선포와 더불어 민초들의 심신의 치유에 온힘을 다하십니다.
주님을 참으로 감동시키는 것이 믿음이요 오늘 복음에서도 중풍병자 동료들의 우정의 믿음이 빛납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삶이요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아는 행려자가 된 형제가 생각납니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고 모두가 피하며, 찾아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삶의 중심도 의미도 방향도 희망도 없으니 참 막막할 것입니다.
이런 고립단절의 혼자만의 삶이라면 그대로 지옥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중풍병자의 동료들은 간절히 제대로 주님을 찾았고 주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그 동료들의 믿음을 보시고 감동하신 주님은 중풍 병자에게 말합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지요! 예수님 자주 쓰시는 말마디중 하나가 “용기를 내어라”입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세상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날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의 믿음은 약하지만 교회 공동체의 믿음은 강합니다. 제 좋아하는 미사경문중 한 대목입니다.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하셨으니, 저희 죄를 보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소서.’
믿음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새삼 교회의 믿음에 날로 깊이 뿌리내릴 때 성장, 성숙되는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믿음에는 이미 회개가 전제되어 있음을 봅니다. 동료들의 믿음에 감동하신, 죄를 용서받기에 충분한 이들의 믿음을 본 주님의 과감한 용서 선언에 이어 치유 선언입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일어나 내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으니, 주님을 만나 온전한 전인적 치유의 구원을 받은 중풍병자입니다. 이제부터 삶의 중심이신 주님 반석위에 인생집을 짓게 된 치유받은 중풍병자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을 만나 죄를 용서받고 치유받아 파견되는 우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혼과 육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죄로 병들면 몸도 병들기 마련입니다. 심신의 치유, 영육의 치유에 참된 회개가 얼마나 본질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몸의 치유에 앞서 죄의 용서를 통한 영혼의 치유가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우선적으로 튼튼하고 건강해야할 정신이요 마음이요 영혼입니다. 이래서 영육의 치유에 앞서 죄의 용서를 위한 고백성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와 하느님의 예언자 아모스와의 대결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참 어른이자 예언자인 아모스의 권위는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함을 다음 대목이 보여줍니다. 하느님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에 이런 솔직하고 과감하고 통쾌한 고백입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리고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너는 이제 주님을 말씀을 들어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아모스 예언자입니다. 회개의 핵심은 하느님께 돌아와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사명을 다하며 제대로 온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복음의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죄를 용서 받고 치유의 구원을 받아 이제 이렇게 온전한 구원의 삶을 살게 되었음을 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삶의 제자리에서 제대로 치유와 구원의 기쁨을 살게 합니다.
“주님의 규정은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금보다 순금보다 값지며, 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시편19;9.11).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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