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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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05 | 조회수7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7/5) :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 제1독서 : 2역대 24, 18-22 * 제2독서 : 로마 5,1-5 * 복음 : 마태 10, 17-22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오늘의 강론 :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우리는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신심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충남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3남매 중 맏아들이셨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사위의 밀고로 체포되어, 아들을 국경을 넘겨 보낸 국사범으로서 온갖 잔악한 형벌을 받은 후에 서소문 밖에서 목 잘려 순교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열다섯 살 때, 곧 1836년에 고국을 떠나 중국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셨습니다. 그 후에 여러 차례 입국하고자 시도했다가 실패했으며, 마침내 1845년 1월에 온갖 고생을 겪고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셨습니다. 그러나 전교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몸이 불편한 중에도 온갖 고초를 겪으며 다시 상해로 가셔야만했고, 1845년 8월 17일에는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밤낮으로 열심히 사목하던 중 체포되셨습니다. 그는 모진 문초를 받으면서도,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고통을 참으라는 편지로 격려를 하셨습니다. 1846년 9월 16일, 사제품을 받은 지 1년 1개월 만에 스물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참수의 거룩한 순교의 빨마를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1949년에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정되셨고, 1984년 5월 6일에 성인으로 시성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 때문에” 모진 핍박과 수난 속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 하셨습니다. 참으로 살 때나 죽을 때나 오로지 “예수님 때문에”만 살고, “예수님 때문에”만 죽으셨습니다. 마치 사도 바오로의 고백에서처럼,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성인의 “옥중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이처럼 성인께서는 참으로 “예수님 때문에” 고문을 받으셨고, “예수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성인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랑으로, 오로지 예수님께 희망을 거셨습니다. 그렇기에 핍박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까지 드리셨습니다. 참으로, 성인께서는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시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하셨다.’(로마 5,2-3).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렇게 십자가에서 아버지를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증거는 단지 십자가에서만 있었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공생활을 통한 일상적인 삶 전부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증거의 삶이,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증거”, 곧 우리의 “순교” 역시 우리의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연속되는 죽음 속에 자리 잡아야 할 일입니다. 곧 일상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의 뜻에는 스스로 죽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서, 매순간을 “순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2고린 4,10-11)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시고.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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