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김찬선 신부님_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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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06 | 조회수8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여기서 새 포도주는 무엇일까요? 새로운 사조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새 부대는 무엇일까요? 새로운 사고 방식인가요? 그렇습니다. 새로운 사조를 받아 들이려면 새로운 사고 방식이 필요합니다. 고루한 사고 방식으로는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며칠전 한 형제가 요즘의 놀라운 흐름을 들려주었습니다. 15분짜리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팝콘을 다 먹기 전에 영화가 끝난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도 단편 영화는 있었잖습니까? 그래서 그런 것인가 했는데 그것과는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긴것은 지루해서 보지 못하고 짧아야지만 보기 때문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것은 이런 사조나 흐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제 생각에 이것은 새롭기는 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또 많은 것이 새롭기는 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몰려드는 새로운 것을 가운데서 어떤 것이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것인지 늘 식별해야 합니다. 사실 요즘은 새로운 것이 너무 많아서 문제이고 나이 든 사람에게는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기도 전에 또 새로운 것이 나와 문제이고 그래서 새로운 것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 말하지만 늘 식별해야 하고 잘 식별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이로운것니까? 물론 이로운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로운 것이 해롭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로운 것도 또 식별해야 하는데 많은 해로운 문명과 문물이 대개 이러합니다. 요즘 인공지능의 문명과 문물이 이러합니다. 제 생각에 식별의 완전한 기준은 사랑입니다. 문명이건 문물이건 제도이건 주의이건 사랑에서 비롯되고 사랑에 이바지하면 그것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새 포도주이고 그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새 부대이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단식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십니다. 사랑 곧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사랑에서 비롯된 단식이요 사랑을 위한 단식은 우리가 해야 할 단식이고 그런것이 아니라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도 남에게 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단식이라 음식을 끊는 것인데 우리가 끊어야할 것은 음식이 아니라 욕심이지요. 우리가 끊어야 할 것은 사랑이 아니라 애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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