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4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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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7-06 | 조회수227 | 추천수8 | 반대(0) |
교구사제모임에서 중요한 것은 사제들과의 친교입니다. 한국에서는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오히려 미국에 있으면서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각자가 사는 곳에는 교구 사제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부님들과 친교를 나누면서 신학교에서 자주 불렀던 성가가 떠올랐습니다.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 한지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한데 모여 사는 것. 오직 하나 하느님께 빌어 얻고자하는 것 한 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 알라스카에서 온 신부님은 비행기를 3번 갈아탔다고 합니다. 콜롬비아에서 온 신부님은 선교센터가 있으니 언제든지 오라고 초대합니다. 시카고에서 온 신부님은 모금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워싱턴과 댈러스의 신부님에게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멕시코에서 온 신부님은 담낭에 생긴 담석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합니다. 유학생 신부님들은 언어 배우면서 힘들었지만, 이제는 지낼 만 하다고 웃습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신부님은 제대를 기다리는 군인의 심정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뉴욕의 신문사에 있다가, 댈러스의 한인 성당에 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일 막내 신부님과 저는 31년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3박 4일이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지나갔습니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면 내년에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교구사제모임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주교님과의 면담입니다. 저는 주교님과 명동 교구청에서 5년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주교님은 보좌 주교님에서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이 되셨습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주교님은 여전히 겸손하시고, 사제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셨습니다. 주교님은 저와 면담하면서 잠깐 놀라셨습니다. 명동에 있을 때 저는 염색해서 머리카락이 검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저는 염색하지 않았고, 지금은 머리카락이 하얗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놀라셨지만 은색의 하얀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덕담해 주었습니다. 제가 변한 것이 있다면 머리카락의 색입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저는 여전히 서울대교구의 사제입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한국에 돌아가도 본당 사목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면담을 마친 후에 교구장님은 교구의 현황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3년 후에 있을 세계 청년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청년대회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년대회를 통해서 교회가 새롭게 변화 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협력 사제, 미사 도우미 사제, 공소 사목 사제, 기도 전담 사제를 임명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20년 가까이 보좌 신부로 지내야 하는 신부님들이 10년 안에 본당 사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전에는 율법과 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바리사이였습니다. 전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잡으러 다녔고, 교회를 박해하였습니다. 전에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죄인 취급했습니다. 전에는 로마의 시민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전에는 가말리엘 밑에서 율법을 배웠다고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체험한 이후에는 많은 것이 변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키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믿음과 복음에 대한 확신으로 구원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힘이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긴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도들은 변화된 바오로를 공동체에 받아들였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고, 예수님의 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편견이라는 안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선입견이라는 안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안경을 써야 합니다. 희망의 안경을 써야 합니다. 사랑의 안경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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