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의 목자 바오로 사도의 전도 여정과 신앙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참으로 감동적이고도 눈물겹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많은 일을 해냈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저도 나름 일인다역을 하고 있고, 몸 사리지 않고 죽기 살기로 뛰어다닌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어제 오늘만 해도 제 삶을 돌아보니, 제가 생각해도 웃겼습니다. 주방에서 열심히 감자를 깎다가, 부랴부랴 올라가서 강의하고, 초스피드로 내려와서 매운탕 펄펄 끓이고, 또 올라와서 미사 준비하고, 촛불켜고, 입장하고...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와 비교하니 저는 포크레인 앞의 삽 한자리일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살아생전 따라다니던 애칭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백개의 팔을 지닌 사나이’였습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전도 여행을 계속하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랴, 틈틈이 여러 교회 지도자들과 교우들에게 편지를 쓰랴, 여기 저기 공동체 건설하랴, 지도자 양성하랴... 바오로 사도는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인해 개인적인 삶, 안락한 삶, 편안한 삶과는 영영 작별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펄펄 끓는 열정과 넘치는 에너지로 활활 타오르던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업무 추진 능력은 탁월했습니다. 그만큼 바오로 사도는 건강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으로부터 불림 받지 않았더라면 잘 나가던 검투사를 했어도 이름을 날릴 수 있었을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오로 사도는 자신에게 말못할 평생 지병이 하나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던 많은 학자들은 바오로 사도의 고질병을 지칭하는 ‘가시’가 과연 무엇인가, 오랜 세월 두고두고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그 병명을 밝히지 않은 이상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추측만 할 수 밖에요. 어떤 학자들은 그 가시를 안질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바오로 사도는 이미 눈에 큰 충격을 입어 사흘간이나 실명 상태에 놓여있었기에 그 후유증이 상당하리라는 추측입니다. 다양한 가설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봤을 때 질병이라기보다 성격적 결함이 아니었을까, 추측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불같은 성격, 순식간이 끓어오르는 분노, 그래서 이웃들의 약함이나 부족함을 인내하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그런 실수를 말하는 것을 아닐까요? 그도 아니라면 나와 맞지 않는, 끊임없이 나를 곤경으로 몰고 가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에 앞서 자신의 약점이랄까 취약점, 감추고 싶은 상처를 용감하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바오로 사도의 용기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밝히는 것을 넘어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약점을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초대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의 참된 사도요 스승이었다는 것은 바로 여기서 명명백백하게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 한번 보십시오. 그들은 어떡하면 자신의 약점이나 취부,부끄러운 과거를 한사코 감추려고 기를 씁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쟁력, 수상경력, 업적만을 과대 포장해서 자랑스럽게 내놓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솔직하게 밝힙니다. 자신이 저질렀던 지난 과오들, 자신의 약점들, 자신이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부끄러운 과거들조차 아낌없이 다 밝힙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자랑할 약점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힘이 내 우리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할 가시는 무엇입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