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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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7-08 | 조회수269 | 추천수5 | 반대(0) |
‘3박 4일’의 교구사제모임을 마치고 신부님들은 삶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 날에 신부님들은 교구장님과 대화 하면서 몇 가지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미주지역에도 ‘미사 도우미 사제’를 파견해 달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는 작년부터 ‘미사 도우미 사제’라는 직책을 신설했습니다. 미주지역에 있는 사제들은 비자 갱신 때문에 한국에 가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피정이나 휴가를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미사를 도와줄 사제를 구하는 겁니다. 보좌 신부님이 있거나, 대도시에 있는 신부님들은 그나마 미사를 도와줄 사제를 구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소도시의 작은 규모의 성당에서 사목하는 신부님들은 미사를 도와줄 사제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도움을 청한다 하더라도 한 달 가까이 미사를 도와준다면 그에 대한 사례비를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사 도우미 사제가 있다면, 해외 교포 사목의 경험이 있는 사제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미사 도우미 사제는 신부님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원하면 고백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교구장님은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할 수 있다면 미사 도우미 사제의 파견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교구사제모임의 장소에 대한 의견도 있었습니다. 현행의 장소 선정은 4개 본당이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홀리 엔젤스 성당, 워싱턴 DC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 타코마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입니다. 4곳 모두 성당의 규모가 큰 편이고, 보좌 신부님이 있습니다. 모임을 개최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성당입니다. 신부님들은 규모가 작은 성당에서도, 남미에서 선교하는 성당에서도 교구사제모임을 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공항에서의 이동을 대중교통이나 우버를 이용하고, 피정의 집을 숙소로 정하면 본당의 규모와 상관없이 개최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하루는 피정의 집에서 성체조배와 피정을 하고, 하루는 교구사제들이 친교를 나누고, 마지막 날에는 사목의 체험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포 사목 성당도 고령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봉사와 도움을 받기보다는 사제들이 스스로 모임을 꾸려 가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교구장님은 사제들의 의견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2026년의 교구사제모임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교구장님은 선교 사제들, 유학 사제들, 본당 재정이 힘든 사제들에게 특별히 격려금을 주셨습니다. 교구사제모임의 대표를 교구장님이 임명하고, 공문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대표가 활동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미주지역에 있는 사제들을 하나의 지구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에 있는 지구장 제도를 미주지역에도 도입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미주지역이 워낙 이동거리가 멀기 때문에 본당 사목을 하면서 지구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미사 도우미 사제가 지구장과 대표를 겸임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 재정 지원을 받기 보다는 미주지역의 본당에서 재원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주 지역에서 고백성사와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서는 각 교구에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고, 지구장 제도의 도입과 재정지원은 다른 지역(유럽, 아시아, 호주)과의 형평성도 있기 때문에 검토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현임 대표신부님이 내년에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에 새로운 대표를 선출해야 했습니다. 관례상 서품 연도가 가장 빠른 사제가 대표가 되었기에 제가 대표로 추대되었습니다. 신부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는 경쟁과 성과를 이야기합니다. 성공, 명예, 권력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풍요로운 삶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윤을 위해서는 양심을 속이기고 합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사랑해야 할 가족들마저 외면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엉킨 매듭을 풀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성격이 급해서 엉킨 매듭을 천천히 풀지 못하는 편입니다. 종교란,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삶에서 생기는 엉킨 매듭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은 외면한다고 해서, 덮어버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진지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교회는 옷에 흙이 묻을지라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지금의 시대에도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일구어가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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