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10,6~7)
어제 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기가 꺾여 풀이 죽은 듯 보이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9,36~38) 예수님께서 언급한 ‘수확할 일꾼’이란 처음부터 씨를 뿌리고 모를 내는 일꾼이 아니라 이미 주인이 시작해서 농사지어 놓으셨고, 다만 수확할 것을 거두어 드릴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확할 것을 거두어 드릴 일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일꾼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이 이미 다 해놓으신 것을 거두어들이는 일인데, 예수님께서 하시고 이루신 일은 곧 사람을 살리는 일 곧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강생과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요19, 30)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루신 인류 구원 사업을 계승할 일꾼들이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완성해 놓으신 인류 구원 사업을 계속할 열두 사도들을 뽑으셔서 삶을 통해 가르치시고 파견하셨습니다. 구원 사업에 부르심받은 이들은 많지만, 예수님이 하신 방법대로 수확할 일꾼은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22,14) 분명 일꾼으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말 그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수확을 거두어들이려고 했지, 예수님 방식대로 수확을 거두어들이려는 일꾼은 오직 예수님께서 선택한 소수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였지만, 정말 믿을만할 예수님의 일꾼은 많지 않았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찾으시는 추수할 일꾼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먼저 홀로 아버지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시고, 자신이 해야 할 일 곧 아버지의 뜻을 지속해서 실천할 사도들을 하나하나 이름 불러 뽑으셨습니다. (10,2~4) 제자들이 예수님을 뽑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요한15,16 참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3,14-15)라는 점입니다. 즉 복음 선포자가 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점은 바로 스승이신 예수님과 몸과 마음이 함께 머물면서 삶을 통한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교육은 이념적 교육이 아니라 스승이신 주님과 함께 삶을 통해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터득되고 내면화되어가는 삶의 교육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삶의 교육을 통해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처럼 군중들을 가엾은 마음에서 대하고 그들과 함께하면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엾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능력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의 영과 마음으로 충만할 때 수확할 힘을 길러내고, 수확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선택하고 양성시키신 다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10,6)하고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의 명단(10,2~4)을 유심히 살펴보면, 가장 인상적이고 특징적인 점은 이들 선택된 제자들이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정말 하찮은 사람,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부르심 받고 선택받은 것은 우리 역시도 제자들과 마찬가지 혹 어쩌면 더 부족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분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1코린1,26.29) 라고 설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선택 기준은 그들이 부르심 받기 이전의 출신 성분, 교육 정도, 성격, 직업의 상태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래에 ‘그 무엇이 될 가능성’을 꿰뚫어 보시고 또한 하느님의 은총에 얼마나 순응하고 조화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를 보고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라 봅니다. 그러므로 제자로 부르심 받은 이들은 이미 완성되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차츰차츰 변화되고 성숙 되어 갔던 것입니다. 이런 양성 과정을 통해 사도들은 자신들의 지식, 능력 그리고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에 의탁하면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10,6.7)라고 파견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사도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에 의존하고, 사랑에 의탁하며 살아갈 단순하고 순박한 믿음을 지닌 하느님의 사람, 복음 선포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하느님의 사람 곧 복음 선포자가 되기 위해서 먼저 하느님과 함께 머물고, 머물면서 체험한 바를 삶을 통해 하늘나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존재가 되어가도록 노력하며 살아갑시다. “주님이 얼마나 좋은 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시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