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버팀목이신 그분 뜻 따라 복음 선포를 /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마태 10,7-15)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마음이 깨끗할수록 하느님은 더 맑게 투영됨 | |||
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7-10 | 조회수9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버팀목이신 그분 뜻 따라 복음 선포를 /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마태 10,7-15)
우리는 자신이 받은 것을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시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공으로 돌리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한 여태까지, 가족과 주위의 이웃들로부터 공짜로 받은 게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을 게다. 신앙에서도 우리가 이만큼 하느님의 깊은 신비를 깨닫고, 세상을 거룩한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이렇게 부르시어 세례성사의 은총으로 키워 주신 덕분일 게다. 우리는 이처럼 공짜로 받은 것을 ‘은총 또는 특전’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선포하여라. 그리고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또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나누어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며, 마귀를 쫓아내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라신다. 우리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만 할게다. 바오로 사도도 자신이 보잘것없고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이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라고 담담하게 고백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이는 금이나 은이나 여행 보따리도 필요가 없다. 하느님 나라의 평화가 단지 거기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기에. 사실 제자들은 자기 것이라고는 전혀 챙기지 못한 채, 오직 복음 선포에만 전념해야 할게다. 그런데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으리라. 어떤 이들은 박해받기도. 형제들이 요셉에게 했던 것처럼 어떤 이들은 그들을 팔아넘기기도. 그러나 제자들은 개의치 않고 계속 복음을 전했을 게다. 그들은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 다른 이들보다 앞서 보내신 이들이기에. 그렇지만 그분 눈길을 떠나는 순간, 어쩌면 그분께서 주신 그 능력도 사라질 게 당연하다.
복음 선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다 채워 주신다. 이 은총을 알아보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출발점이리라. 그저 밥 한 끼에 성경만 읽은 그 옛날에는 돈 한 푼도 없으니까, 마음이 참으로 편했단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인 연금이라는 돈이 좀 수중에 생기니까 손주들에게 용돈도 주고, 하고 싶은 것이 여기저기서 종종 생긴다나. 처음엔 그게 그저 좋았는데, 점점 욕심이 생겨나, 그 전보다 오히려 마음이 산란해지고 평화롭지 못하게 된 게 쾌나 아쉽단다. 기도 속에 참으로 자유롭게 사시던 할머니에게 얼마 안 되는 돈이 영성 생활에 끼치는 하나의 사례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재물만 모으면 삶이 안정되리라 여긴다. 그러나 속담에 ‘말 타면 종두고 싶다.’는 게 되듯, 욕심은 가진 만큼이나 더 불어날 게 뻔할 뻔자다.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게 내 노력인 것 같지만, 사실은 거저 받았을 뿐이니까. 세상눈으로는 많이 가지면 행복해지라 착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에게는 소유 자체가 그리 큰 힘이 아니다. 악한 기운이 덮쳐 서서히 또는 급작스레 무너진 것을 수차 보고 또 보았으니까. 우리는 그분께서 버팀목이 되어 주셨기에 여태 어떤 욕망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래도 홀가분하게 살았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살도록 파견된 신앙인이다. 그저 남 달리가 아니다. 예수님은 늘 ‘부족한 채’로만 살라신다. 그래야 당신에게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