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난세(亂世)중 영적승리의 삶 | |||
---|---|---|---|---|
이전글 | 최원석_사람들을 조심하여라 | |||
다음글 | 이영근 신부님_“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 | |||
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12 | 조회수11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회개하라, 지혜로워라, 걱정하지 마라, 희망하라, 인내하라”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엊그제 처음 발견한 어휘가 있습니다. 모 정치인이 대표직에 도전하면서, “나는 단언컨대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르기가 돼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먹사니즘은 ‘먹고살다’와 이념, 철학등을 의미하는 영어 접미사 ‘ism“의 합성어로서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라 합니다.
예전 언제나 자주 듣는 말이 말세라는 단어였는데 어지럽고 혼란한 현실이 늘 말세요 난세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한국의 현실이 그러합니다. 지금부터 32년전 1992년 제가 왜관수도원에서 종신서원미사에서 한 명강론 제목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인데 지금도 자주 강론에 인용되는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때나 여전히 난세같은 혼돈의 세상입니다. “호주는 재미없는 천국,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란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얼마나 한국이 역동적 사회인지 깨닫습니다.
‘먹사니즘’이 아니라 ‘하느이즘’이 우선입니다. 제가 방금 생각해낸 하느님 주의가 하느이즘입니다. 예나 이제나 늘 난세입니다. 난세를 극복하는 근본적 처방은 하느이즘의 즉 하느님 중심 삶의 생활화입니다. 마태복음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은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1.33)
비단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정말 겸손히 기도하며 지혜를 청하는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종파를 초월하여 모두가 기도해야할 난세같습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은 난세를 살아가는 지도자뿐 아니라 모두가 경청해야 할 말씀같습니다. “풀이 우거진 수풀도 사람이 자주 다니면 길이 생긴다. 지도자는 앞장서서 그 길을 간다.”<다산> 묵묵히 하느님의 빛의 인도하에 길을 내어 수풀같은 난세를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바른 도리로 이끈다면 누가 바르지 않겠는가?”<논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말씀에 따라 바르게, 반듯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선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고맙고 반갑게도 복음의 예수님이 호세아 예언서 마지막 부분에서 호세아 예언자가 난세를 살아가는 영적승리의 길을 제시합니다. 예수님 당대나 호세아 시대 역시 난세중의 난세였습니다.
첫째, 회개하라! 회개를 통해, 회개의 여정을 통해 끊임없이 내적혁명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주님의 회개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하느님의 말씀도 참 아름답습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 사랑에 정통한 신비가요 영성가요 사랑의 시인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회개의 축복을 깨닫고, 분별있는 사람은 이를 알것입니다.
둘째, 지혜로워라! 참된 회개의 열매가 겸손과 지혜입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회개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진 삶입니다. 옛 사막교부들을 찾았던 구도자들의 우선적 관심사도 삶의 지혜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삶의 지혜를 회개를 통해 주님으로부터 배웁니다. 새벽 강론 쓰는 시간은 기도시간이자 회개시간, 그리고 지혜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주신 주님의 말씀은 오늘 이리떼들 무수한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합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니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뱀처럼 슬기롭게,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우리의 난세를 타개하는 참 좋은 처방입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할 때 이런 슬기와 순박함의 선물입니다.
셋째, 걱정하지 마라! 몰라서, 주님을 떠나 걱정이요 불안이요 두려움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난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늘 주님과 함께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위로와 격려말씀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무지로 인한 걱정과 불안, 두려움입니다.이런 주님께 대한 믿음이, 믿음의 빛이 걱정과 불안,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주님 말씀의 빛입니다.
넷째, 희망하라!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상징하는바 희망의 주님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도래의 희망이 샘솟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의 원천입니다. 희망해서 사람입니다. 희망의 주님을 선택하여 희망을 훈련하고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 날마다 바치는 희망의 주님을 노래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 기도가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희망의 힘, 희망의 빛입니다.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순례자 되어 절망중에도 주님을 희망하며 희망의 여정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다섯째, 인내하라! 최종의 승리자는 끝까지 견뎌내고 버텨내는 인내의 사람입니다. 인내의 믿음, 인내의 사랑, 인내의 겸손입니다. 참으로 희망의 하느님께 눈길을 둘 때,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둘 때 백절불굴의 믿음입니다. 이런 희망의 주님을 기다리기에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당시 주님 믿음으로 인한 처절한 박해상황임을 짐작합니다. 양상만 다를분 오늘날도 악순환처럼 반복되는, 연옥같은 힘든 상황을 살아가는 분들은 힘을 내십시오. 끝까지 견디는 인내의 믿음이 나를 구원합니다.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의 정주서원은 주님 불러 주신 삶의 제자리에서 한결같이 항구하고 충실한 이런 인내의 삶을 뜻합니다.
난세의 광야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예나 이제나 반복되는 인간 고난의 현실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묵묵히, 충실히, 끊임없이 회개하고, 지혜롭게, 걱정하지 말고, 주님께 희망을 두고, 끝까지 견뎌내는 인내의 믿음으로, 날마다 난세중에도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주소서.”(시편51,14).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