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마태오 10, 24 - 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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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07-12 | 조회수13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두려워하지 마라.” (10,26.28.31) 사실 제 머리의 탈모는 제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까지 하느님도 제 머리카락 숫자를 분명히 세어 두셨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제 머리카락 숫자는 어머니를 잃고 난 뒤 스트레스로(=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강했지만...) 더 이상 셀 수 없을 만큼 빠지기 시작했고 이젠 거의 포기 상태입니다. 저야 이젠 신경도 쓰지 않은데 설마 무척 분주하실 하느님께서 아직도 제 머리카락 숫자에 관심을 두시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설마 아직도 제 머리카락 숫자에 관심을 쏟고 계신다면, 요즘 말로 대박입니다. 오늘 복음을 읽다 보면, “두려워하지 마라.”(10,26.28.31)는 구절이 무려 3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닥쳐올 온갖 위험을 예고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마라, 고 권고하십니다. 이는 분명 제자들이 나갈 세상의 현실을 진단하신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제자들의 내적 상태를 꿰뚫어 보셨기에 반복해서 두려워하지 마라, 고 당부하시면서 위로와 용기를 심어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할 것이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무엇을 말할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약속한 성령이 오면 너희를 대신해서 모든 상황에 적절하게 말씀하시고 이끌어 줄 것이다.”(10,19.20참조)라고 확약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두렵게 하여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마십시오.”(1베3,14)라고 말합니다. 결국 베드로 사도는 사람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8) 또한 시편에는 “주께서 나의 빛 내 구원이시거늘 내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께서 내 생명의 바위시거늘 내 누구를 무서워하랴.”(27,1)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 내면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짙게 내재해 있다가, 현실 상황과 사건, 사람에 의한 자극에 의해서 두려움이 우리 의식으로 솟구쳐 오른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인생이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여정에서 숱한 두려움을 직면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의 실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나약하고 미약한 존재이며 이런 한계상황을 체험하면서 우리는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현재는 하느님의 사랑에,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내어 맡기라”는 성 아오스딩의 표현에서 위안과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기에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육신을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10,28)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곧 지혜의 시작이며 그 지혜는 우리를 두려움에서부터 자유롭게 하리라 믿습니다. 인간의 깊은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을 이 지혜의 빛으로 비춤으로 환상에서 깨어나게 되고, 상대적으로 인간 존재에 비해 하찮은 참새마저 지켜 주고 돌보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은 더 이상 우리를 억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단적인 실례가 창세기에서 요셉의 형제들이 갖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인지 모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창49,19.20)라고 말하는 저변엔 진정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다시 일깨웁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시8,5) 두려움은 오직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겨울 눈이 따뜻한 봄 햇살에 의해서 녹듯이 사라지리라 봅니다. 『온갖 두려움과 모든 근심 저 멀리에 던져 버리오며 주님 아름다움 생각할 때 내 마음엔 큰 기쁨이 넘치네.』 (가톨릭성가 ‘주님 저 하늘 펼치시고’ 중에서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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