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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름 받았기에 두려움은 떨치기로 / 연중 제14주간 토요일(마태 10,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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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2 조회수82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름 받았기에 두려움은 떨치기로 / 연중 제14주간 토요일(마태 10,24-33)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운 사명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게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파견하시는 그분께서는 누가 뭐래도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다 세어 두실만큼 우리를 소중히 여기신다. 그리고 우리 부족분을 시도 때도 없이 어디서나 늘 당신 힘으로 다 채워 주신다. 따라서 비록 죄인일지라도 거짓 평화에 안주하지 않고 하느님 정의를 외치는 게 일차 우리 모두의 마음가짐이리라.

 

아버지는 자식이 아무리 짜증내고 불평해도 마음속을 뚫어 보신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는 단지 일개 어린이일 따름이다. 그래서 다들 두려워만 한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적 빈곤을 염려한다. 돈 없는 미래가 될까 봐 시간만 나면 전전긍긍이다. 이런 사실과 달리 하느님 자녀가 되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어 어떤 위험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피난처를 얻었다고 믿는 이들이 있기도 하다. 정말 그렇게 사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


사실 예수님은 미래에 염려하고 바장이는 이런 우리를 두고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신다. 하찮은 참새도 당신 허락으로 땅에 떨어진단다. 그런데 우리는 두려워만 한다. 막연한 두려움에 열정을 빼앗긴다. 대부분은 몰라도 되는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탓일까?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단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거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일 게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그러하지만 실상은 다소 두렵단다.

 

위협받는 생명에 목숨 빼기는 일이 자주 이어진다. 예전보다 지금은 만나는 게 더 무서운 세상이란다. 왜 이렇게까지 안타까운 지경이 되었을까? 생명의 존엄성은 무시된다. 이렇듯 주어진 생명일지라도 실상은 우리 게 아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을 좌우하시는 하느님만이 우리 영혼을 어루만진다. 그래서 내 모든 걸 아시는 주님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 과장되고 왜곡된 내가 아닌 비천하고 죄스러운 그대로의 만남이, 주님께는 더 아름다울 게다.

 

이미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하늘나라가 완성될 때에 믿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게다. 그렇지만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장차 이루어질 약속에 대한 희망을 향해가는 그 여정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닥칠 시련을 예고하신다. 그러기에 막강한 국가 권력을 쥔 통치자들은 물론, 얼굴조차 모르는 이웃의 박해가 따를지라도 미리미리 그것에 걱정일랑 하지를 말라신다.

 

사실 주님은 잘나고 죄 없다는 나를 사랑하시는 게 아닌, 죄인임을 고백하는 나를 더 사랑하시리라.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만나면 두려움은 자연 저 멀리로 사라질 수밖에. 사실 하느님을 증언하면 때로는 미움을 받을 수도.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할게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을 증언하라신다. 그리하면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숨겨져 있던 구원을 직접 보게 될 터이니까.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그러기에 고통스럽고 당혹한 상황에 직면하여 당황하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말씀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늘 되새기자. 물론 절망의 한계를 절감하는 그 순간도, 그분의 도구로 선택된 우리는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다짐하자. 따라서 어떠한 어려움이 우리를 닥칠지라도, 두려움 없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한다고 다시 또 다짐을 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머리카락,믿음,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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