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캠프 온 아이들을 위한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대형 식자재 마트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잔뜩 산더미처럼 카트에 싣고 계산대 앞에 서니 근무하시는 자매님께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묻습니다. “사장님은 대체 무슨 일을 하신데요?” 그 상황에서 ‘사실 저는 천주교 신부인데요!’ 하기도 거시기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식당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식당이 아닌 것 같은데...아무튼 더위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십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야 재미있고 기쁜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가족들의 생계가 자신의 어깨에 달려있는 자영업자들,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으실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는 마트 직원의 질문 앞에 다시 한번 제 신원, 제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각별히 총애하셔서 이름을 불러주시고, 선택하시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셨는데, 그러한 소명에 기쁘게 응답하고 있는지, 마지막까지 충실하고자 애를 쓰는지 크게 반성이 됩니다. 예언자로 산다는 것, 때로 근사하고 멋있어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폭군이나 압제자의 잔악한 횡포나 그릇된 지도층 인사들의 타락 앞에서도 그저 숨죽이고 지낼 뿐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들 한번 보십시오. 주님으로부터 예언의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니 고관대작들 앞으로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며, 그의 파렴치한 치부를 아무런 가감없이 고발합니다. 서슬퍼런 예언의 말씀 앞에 왕들조차 고개를 조아립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평생 한두번입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생애는 핍박과 돌팔매질과 추방과 놀림의 연속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자신에게 예언자의 소명을 주신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도망다니기까지 합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는 거룩한 주님의 지성소 베텔 땅을 더럽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가서 예언하며 밥 먹고 살아라, 는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의 질책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아모스 7,14-15) 보십시오. 아모스 예언자는 철두철미한 신원의식, 겸손한 신원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단한 예언자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근본, 본래 처지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본래 양치는 목자요, 돌무화과 나무를 가꾸는 농부였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결핍 투성이요 천덕꾸러기였던 원래 나의 허물을 벗고 사목자가 되고 책임자가 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변합니다. 자신의 근본을 잊고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어딜 가면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 나를 보필해야 합니다. 슬슬 주님께서 혐오하시는 거짓 목자, 삯꾼으로 전락하는 중입니다. 요즘 저는 일부러 이런저런 힘든 일들을 골라 하고 있습니다. 저도 까마득한 시절에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산업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근로자였습니다. 예언자요 사목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는 비결은 나의 근본, 내 결핍 투성이의 보잘것없던 모습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