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마르 6,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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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13 | 조회수8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7/14일) : 연중 제 15 주일 *제1독서 : 아모 7, 12-15 * 제2독서 : 에페 1, 3-14 * 복음 : 마르 6, 7-13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 오늘의 강론 :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다.”(마르 6,12-13) 우리는 모두 각자 사명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사명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것은 신원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원에 대한 각성이 자신의 사명을 충실하게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전례>는 “말씀 선포의 사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파견 받은 이”라는 신원에서 주어집니다. <제1 독서>에서 아모스는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파견 받음에서, <제2 독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아버지로부터 파견 받음에서, 그리고 <복음>에서 열두 제자는 예수님으로부터 파견 받음에서 그 ‘사명’이 주어집니다.
<제1독서>는 남 유다의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 와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자, 사제 아마츠야가 그를 위협하며 쫓아내는 장면입니다. 왕실 사제인 아마츠야가 자신을 반대하는 아모스를 받아들이지 못한 까닭은 자신의 신원과 권한이 침해당하고 위협당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득권을 놓을 수 없어, 일종의 제도권의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처럼, 말씀의 선포는 아프게 찌르기에 때로는 받아들여 지지 못하고, 주변부로 내쳐지기도 합니다. 사실, 예수님도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내쳐졌고, 반대 받는 표적이 되어 성문 밖에서 매달리어 십자가에 처형되셨습니다.
<제2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소아시아의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옥중서한의 서두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파견하시어 그분의 피를 통해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고, 이 ‘사명’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성령을 파견하셨음을 말해줍니다.
<복음>은 열두 제자의 파견 장면입니다. 이는 세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기 이전의 장면’과, ‘파견하시는 장면’, 그리고 파견 받은 제자들이 ‘그 사명을 이루는 장면’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 장면>에서는, 마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아모스를 붙잡으셨듯이, <제2독서>에서 우리를 창조 이전에 이미 선택하셨듯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기에 앞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주십니다.”(마르 6, 7). <둘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복음 선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세를 가르쳐주십니다. 파견 받은 자에게 길을 떠날 때는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곧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의 돈도 가지지 말며, 신발도 옷도 두 벌을 가지지 말라(마르 6, 8 참조)고 제시하십니다. 이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탁하여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지팡이는 가져가라고 하셨을까?
성경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를 떠올려줍니다. 양치기 모세에게는 너무도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지팡이였지만, 말씀과 함께 바다를 내려치면 물결이 갈라지고, 바위를 두드리면 물이 솟아나고, 병든 이들이 쳐다보기만 하면 살아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지팡이로 인류 구원과 사랑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하느님의 권능인 이 지팡이, 그것은 곧 “말씀의 지팡이”입니다. 지팡이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의 말씀이요, 쌍날칼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하느님의 권능인 이 말씀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는가? 그래서 말씀의 권능에 위탁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파견 받은 이들이 한 일에 대해서 전해줍니다.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다.”(마르 6,12-13)
이는 파견 받은 자는 파견 하신 분의 뜻을 선포하고 증거 하는 일을 하여야 함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그분의 권능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는 파견 받은 자임을 돌이켜보고, 내가 지금 파견하신 분께 매여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 말씀의 지팡이를 꼭 붙들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주님! 길을 떠나면서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가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져야할 것을 이미 가진 까닭입니다. 말씀이신 당신과 당신의 권한을 지닌 까닭입니다. 저의 능력으로 당신의 권한을 가로막지 않게 하소서. 저의 말이 당신의 말씀을 덮지 않게 하소서. 저의 무능함과 허약함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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