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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5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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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4 조회수96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15주일 나해] 마르 6,7-15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본 분들이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일은 '짐을 더 줄이지 못한 것'입니다. 출발하기 전에 짐을 최대한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수 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길을 걷다보면 처음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챙겼던 물건들도 나중엔 너무나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여겨져서 하나씩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끝까지 남겨두는 '진짜 필수품'은 정작 몇 개 안되더라는 것이지요. 여행을 떠나기 전, 어떤 물건이 필요할지 꼼꼼히 따져가며 챙기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입니다.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는데에 도움이 될만한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들을 잘 챙겨야 하는데 정작 필요한 물건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가하면 정말 필요할 것 같아 챙겼는데도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쓰지 않고 '짐'만 되는 물건들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음에는 정말 꼭 필요한 것만 잘 챙겨서 짐을 줄이리라'고 다짐하지만, 자꾸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많이 소유해야만 안심하는 어리석은 욕심쟁이인가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분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여정입니다. 즉, 이 세상의 어느 한곳에서 편안히 ‘머물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과감하게 ‘떠나기 위한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철저하게 가벼워져야만 중간에 지치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다다를 수 있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몸과 마음의 짐을 비우고 가벼워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이는 진리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 고대근동의 관습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 가운데에 하느님 나라가 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고 포용함으로써 화목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이유이자 목표라는 겁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자기가 파는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를 직접 써보고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 지닌 품질 자체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런 물건을 파는 스스로가 당당하고 떳떳하기 어렵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당당하고 떳떳하려면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믿고 따르며 그분 뜻을 전하는 데에서 오는 참된 기쁨을 제대로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굳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사람들은 우리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를,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여정을 떠나는 우리에게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더 가지려고 집착하게 되는 법입니다. 그렇게 우리 덩치가 커지고 무거워지면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일 자체가 힘겨울 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속의 그 어느 것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왜 ‘지팡이’는 가져가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나뭇가지를 깎아 만든 물질적 도구로서의 지팡이를 말씀하신게 아닙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를 가리킵니다. 양치기였던 모세에게 지팡이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작대기에 불과했지만,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바다를 내리치자 물이 반으로 갈라졌고, 그 지팡이에 구리뱀을 걸어 들어올리자 그것을 본 뱀독에 중독된 환자들이 살아나기도 했지요. 즉 모세에게 지팡이는 하느님께서 언제나 자신과 함께 계시며 힘을 주신다는 표징 그 자체였던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팡이를 지니고 가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가 욕심부리며 집착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알아서 마련해 주신다는 ‘야훼이레’의 믿음을 마음에 지니라는 뜻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무르라’고 하십니다. 살다보면 사랑과 호의로 나를 받아들이고 보살펴주는 ‘은인’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 뜻에 깨어있지 못하면 어느 순간 내가 그에게서 받는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며 이것 저것 자신이 원하는걸 요구하기 시작하지요. 심지어 그 사람보다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가 나타나면 그 은인을 배반하고 떠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면 나에게 좋은 마음으로 친절을 베푼 그 사람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다시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주저하게 될 것이고, 나는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배신한 잘못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죄책감으로 자리잡아 신앙생활의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이로부터 호의와 친절을 받을 때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보내시어 우리를 보살피시는 그분 사랑의 섭리로 믿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 기쁘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고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의 결과에 연연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자기가 기대하고 바라는대로 결과가 돌아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남을 원망하며 그들에게 탓을 돌리려는 편협한 마음에서 벗어나라고 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상대방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이런 저런 조언을 하게 될 때가 자주 있지요. 그런데 그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한 지적이나 조언이 그에게 피해를 주거나 콤플렉스를 건드리면 자기 이익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발끈하여 화를 내기도 하고, 역으로 나를 모함하거나 공격하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 선한 의도를 왜곡하고 나를 배척하는 그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아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지요.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발의 먼지를 털듯 털어버리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사람이 몰라주더라도 하느님만은 내 마음을 알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그와 나를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며 꾸준히 기도하면 그분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히 선택하고 부르시어 당신의 뜻과 바람을 우리 마음 안에 심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런 주님을 굳게 믿고, 그분 섭리가 내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하루 하루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그분께서 우리 삶을 충만한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주실 겁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주님께 대한 참된 믿음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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