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근 신부님_<예수님은 ‘참 평화’를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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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14 | 조회수5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34-42).”
1) 예수님은 ‘참 평화’를 주려고 오신 분이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ㄱㄴㄷ).”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0-21).”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믿는 사람들과
안 믿는 사람들이 갈라서게 되고, 안 믿는 사람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마치 예수님께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오신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 분열과 갈등은 가정에서도 일어나고,
가족이 박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마태 10,21).
2)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라는 말씀은,
“가족은 사랑하지 말고 ‘나만’ 사랑하여라.”도 아니고,
“나를 가족보다 더 사랑하여라.”도 아닙니다.
이 말씀에서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들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세속의 물질적인 복만 찾으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외면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
이 말씀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의 가정이 신앙 때문에 해체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성가정’을 이루기를 바라십니다.
교회는 큰 가정이고,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모순 관계도 아니고, 대립 관계도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식구들의 종교와 신앙이 서로 다른 경우가 있고,
가족의 갈등을 극복하는 일이 힘든 고난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신앙인답게 살면서, 인내하고,
식구들을 감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됩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만 찾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이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는 “내가 주는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그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우리는 가족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끝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심판 날에 이산가족이 된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도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고,
떨어져 나간 가족들 때문에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3)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는, 제자들의 신원을 보증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예수님께서 주신 권한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 활동은 곧 예수님께서 하시는 활동입니다.
<이 말씀은, 앞의 5절에서부터 시작된
‘파견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 말씀은, 제자들은(신앙인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예수님의 복음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만 전해야 합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예언자가(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복음을 전해 주는 이와 전해 받는 이가
‘같은 은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
라는 말씀에서 중요한 말은 ‘제자라서’인데,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제자들을(신앙인들을) 맞아들여서 접대하는 것은
곧 그들을 파견하신 예수님을 맞아들여서 접대하는 것입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2).”
<여기서 ‘손님’은 ‘낯선 나그네’이고, ‘천사’는 ‘하느님’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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