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그분께 감사하는 그 마음만이 / 연중 제15주간 화요일(마태 11,2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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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7-15 | 조회수8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그분께 감사하는 그 마음만이 / 연중 제15주간 화요일(마태 11,20-2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기적을 많이 일으키신 곳들을 아주 엄하게 꾸짖으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에.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그 많은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 옷에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을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코라진, 벳사이다와 같은 유다의 여러 고을들을 아주 엄히 질책하신다. 그들은 그분께서 베푸신 그 많은 기적의 은혜를 입었지만, 감사를 느끼거나 지은 죄를 반성할 줄 몰랐다. 회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셨지만, 그들은 엄두도 모른 채 끝내 그 초청을 끝내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그만큼 이미 그들은 예수님 곁을 떠나 있은 채 경직되고 완고했기에. 사실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그만큼 더 높은 도덕적 의무가 요구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뜻하는 그 숭고한 의미이다. 우리 신앙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은 이는 그만큼 더 큰 책임이 부과될 게다.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기적들과 풍요로움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 차면 결국 그분의 꾸지람을 피하지는 못하리라. 우리는 늘 부족할 때에야 주님을 찾는다. 부족함은 우리 마음에 늘 아쉬움을 안겨준다. 또 그것이 더욱 커져 가면 간절함이 되어 누군가를 의지하려 든다. 그러기에 우리는 풍족할 때에 오히려 주님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이때에 더 큰 사명과 임무를 주신다. 이 세상에서 살다보니까 어쩌다 죄인 취급받는 이들의 경우도 그렇다. 범죄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그들의 인생 역정을 자세히 살펴볼 때, 우리역시 그들과 똑같은 환경과 처지였다면, 과연 그들처럼 불행한 길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디 장담할 수 있을까? 그들이 지은 가장 큰 죄는 ‘회개 없는 것’이었을 게다. 사랑을 거스르는 가장 큰 죄도 무관심이리라.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지켜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 은총에 충실히 응답하며, 나날이 회개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가시 틈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를 보고 감사하기보다는 가시에 찔렸다고만 투덜거린다. 날이면 날마다 그저 주는 그 많기도 한 축복에 감사는커녕,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을 두고 두루두루 조상 탓하며 불평만을 쏟아 낸다.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지기 시작한단다. 그래서 십자가에 매달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참된 부활을 체험하리라. 이를 두고 우리는 신앙의 역설이라 일컫는다. 감사할 줄 모르는 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한 이다. 그런 오만 방자함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복마저 언제 그랬냐면서 우리를 서서히 외면하리라. 이 시각 ‘주님, 제게 정말 부족한 당신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꼭 주십시오.’라며 정성을 다해 기도해 보자. 그러면 그분께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꼭 안아 주실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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