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부족함 깨달아 도움 청할 겸손만이 / 연중 제15주간 수요일(마태 11,25-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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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7-16 | 조회수8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부족함 깨달아 도움 청할 겸손만이 / 연중 제15주간 수요일(마태 11,25-27) 요즘 성당에 봉사하는 이들이 준단다. 대부분 맞벌이로 가정을 꾸리기에 봉사할 시간이 없다나. 문제는 누가 보아도 경제적 뒷받침이 있는 이들도 여러 여가 생활로 봉사시간이 정말 부족하단다. 암튼 봉사할만한 이들이 이러저러한 갖가지 이유로 꽁무니를 뺀다. 우리의 실상은 어떤지? 권력에 기대거나 재물에 의지하는 건 아닌지? 주님 앞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를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찬사를 보내시는 저 철부지들이란 과연 어떤 이들일까? 어쩌면 예수님 자신과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맹목적으로 따르는 그 제자들 아닐까? 그렇다. 오로지 외길 인생인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철부지일 게다. 예수님은 이처럼 철부지들에게만 나타나신단다. 미루어 보건대 그 옛날 멋모르고 그분께 불려간 그들은 정말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으로 따랐다. 그것도 삼 년이나 줄곧 따랐다. 그런 철부지 같은 성품이 아니었다면 도중에 수도 없이 그만두었을 게다.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승의 참모습을 깨닫는다. 그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참 모습을 본다. 우리도 그 철부지 제자들처럼 단순함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하리라. 그 단순함만이 그분의 뜻을 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니까. 그러기에 우리 역시 철부지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누구나 다 주님 앞에서는 그저 소박하고 단순한 철부지이기에. 우리 신앙인에게 성찰과 숙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근본인 것은 마음을 비운 수도자들처럼 단순하고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뢰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를 말자. 그분께 늘 순박하고 끊임없는 감사로 나아가야만 사심 없이 마냥 철부지처럼 살게다. 사실 전적으로 어리석고 우둔하기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철부지 아이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이렇게 우리 앞에 다가오는 매일의 삶을 뚜벅뚜벅 잘 걸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지혜이지만, 신앙은 우리에게 대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이들,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는 능력 있는 이들이 공동체의 커다란 기둥이고 힘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신비는 세상의 지혜가 아닌, 그분 말씀의 진리 안에 스미고 그 행동은 사심 없는 순박한 행동에서 나타나리라. 우리 모두는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이름을 가지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속에서 임마누엘 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은 존재들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 안에 의당 머무르신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늘 곳곳에서 당신을 알게 해 주신다. 이 시각도 그분도 함께 하심이리라. 하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공동체에서 일하는 데 자꾸 걸리적거리는 이가 앞자리를 차지할지도. 어쩜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구원 소식이 전해지고 수고하고 짐 진 이들이 먼저 초대될 수도. 이렇게 그분 나라에 먼저 도달하는 이들은 스스로 더 작아질 줄 알고, 더 겸손할 줄 아는 이들이리라. 사회가 발전할수록 우리 욕심도 더 커지고 요구하는 것들도 더 무거우리라.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주님의 도우심을 청할 줄 아는 겸손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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