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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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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21 조회수86 추천수3 반대(0) 신고

* 오늘의 말씀(7/21일) : 연중 제16 주간 주일

* 제1독서 : 예레23, 1-6 제2독서 : 에 2, 13-18

* 복음 : 마르 6, 30-34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 오늘의 강론 :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마르코 복음사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에 하나는 “예수님, 그분은 누구이신가?”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 전례>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곧 예수님은 양떼를 돌보는 “진정한 목자”임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이 “참된 목자”의 상이 곧 메시아의 표상임을 말해줍니다.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당시의 제도권 지도자들(왕들, 사제들)이 하느님의 양떼인 백성들을 보살피지 않고 오히려 죽이고 흩어버리고 헤매게 하였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양떼들을 보살필 ‘진정한 목자’를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목자가 다윗의 후손에서 날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분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실 “우리의 정의”(예레 23,6)이신 주님으로 “참된 목자”인 ‘메시아’로 예고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참된 목자”는 단지 양떼를 흩어지지 않게 하고 헤매지 않게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흩어진 양떼를 인도하고, 헤매는 양떼를 보호하는 분, 양떼를 하나 되게 하고, 평화를 주시는 분”으로, 곧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에페 2,14)로 제시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에페 2,14-15)

이토록 예수님께서 우리 사이의 갈라진 장벽을 허물고, 우리를 새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에페 2,14-16)시키시고 평화를 이루신 “착한 목자”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일이 오늘 우리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할 일입니다. 서로를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는 일’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세 가지로 그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친 제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이요, <둘째>는 몰려든 군중들을 “측은히 여기는 모습”이요, <셋째>는 양들을 “가르치는 스승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파견 받은 사도들이 돌아와 보고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을 만큼 군중이 몰려왔지만, 예수님께서는 지친 제자들에게 ‘가서 좀 쉬어라’고 배려하십니다.

“쉬어라”는 이 말씀에서, 시편작가가 들려주는 진동을 듣습니다.

“너희는 멈추고(곧 쉬고)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

또한, 두 번씩이나 반복되는 “외딴 곳으로 가서”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호세아서>에서 울려오는 진동을 듣습니다.

“이제 나는 그 여자를 외딴 곳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너는 나를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내가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16-22 참조)

그렇습니다. “외딴 곳”에서 벌어질 일은 바로 이 일입니다. 당신을 ‘낭군’이라 부르게 되고, ‘주님’을 알게 되는 일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피곤함에 지친 제자들은 쉬게 하시면서도, 외딴 곳까지 먼저 달려 온 군중을 보시고(마르 6,32 참조)는 마치 목자 없는 양들처럼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마르 6,34). 그래서 환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길 잃은 양들을 먼저 돌보는 “목자”로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애틋한 사랑의 발로로 타인의 상황에 마음 아파함이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연기 나는 심지를 그냥 둘 수 없는, 차마 못 견디는 마음입니다. 사랑 때문에 안달이 나고 몸살이 나서 사랑을 건네주지 않고는 차마 못 베기는 까닭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에 안달이 난 바로 그분’을 만납니다.

그토록 “가엾은 마음이 드신” 그분께서는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하셨습니다.”(마르 6,34).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굶주리고 목마른 것이 진리임을 아셨습니다. 그들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 외엔 결코 그 어떤 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양들을 “진리”에로 인도하는 분이 바로 “참된 목자”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목자가 되려면, 먼저 ‘진리’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참된 양식’을 받아먹는 ‘양’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진정, 우리가 그분의 ‘양’이라면, 우리를 ‘측은히’ 여기시는 그분에게서 우리는 진리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녀야 할 것은 양들을 측은히 여기는 애틋한 마음이요, 참된 진리를 가르치기 이전에 먼저 참된 진리가 되여야 할 일입니다. 그리기에,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양식을 얻는 양이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주님!

저를 외딴 곳, 당신의 거처로 데려 가소서.

당신 안에 쉬게 하소서. 그 쉼 안에서 사랑에 젖게 하소서.

당신 사랑을 알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서 당신을 낭군이라 부르게 하소서.

오, 주님! 당신만이 진정한 쉼이오니, 당신 사랑의 속삭임 안에 쉬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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