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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는 왜 쉬어도 피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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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21 조회수114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나는 왜 쉬어도 피곤할까?>

 

 

 

복음: 마르코 6,30-34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은 참다운 ‘쉼’이 무얼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온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찾는 수많은 군중이 몰려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쉬게 내버려 두고 당신이 직접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들의 쉼을 존중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아서 만성 피로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삶의 에너지를 얻는 참다운 쉼은 무엇일까요? 오늘 제자들처럼 사명을 다 마치고 와서 그 파견한 분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도’와도 연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휴식은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을 얻는 과정입니다. 현실의 모든 어려움은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일이 고되다고는 하지만, 일도 관계가 좋으면 견뎌낼 수 있습니다. 관계가 안 좋으면 아무리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더라도 그 자리가 지치고 고생스럽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관계를 위한 에너지를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쉬고 나서도 다시 사람들을 만날 힘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면 쉰 것이 아닙니다. 현실 도피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 도피와 쉼을 잘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현실 도피는 그것을 하고 나서 다시 일자리나 가정으로 돌아갈 힘이 생기지 않지만, 참다운 쉼은 다시 도전하고픈 용기가 생깁니다. 

 

 

    MBTI라는 성격유형 검사에서 ‘I’와 ‘E’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성격이 ‘E’로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을 만날 때 힘을 얻고 반대로 ‘I’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힘을 회복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격의 유형일 뿐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굳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회복해야 하고 사람을 만날 때 에너지를 빼앗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 에너지를 빼앗기셨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기도하실 때 에너지를 회복하셨습니다. 

 

 

    사람은 진정 혼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내 자아로부터 괴롭힘을 당합니다. 잠을 자도 악몽을 꾸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이 자꾸 자신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도 피곤합니다. 어차피 만나려면 나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존재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존재가 나를 이웃을 사랑하라고 파견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이때 기도가 진정으로 휴식이 됩니다. 

 

 

    EBS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제5화에서 보령의 한 초등학교 여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 벅찹니다. 아이들에게 고함만 지르게 되고 아이들은 선생님을 마녀나 마귀라고 부릅니다. 지친 선생님은 이제 학교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작팀은 가르침은 먼저 관계라고 말해줍니다. 관계를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교육합니다. 가장 일찍 나와 아이들에게 하이 파이브를 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아이들을 일일이 안아줍니다. 친절하게 바뀐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도 선생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학교 가는 게 즐겁습니다. 이제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가 됩니다. 이것이 참다운 쉼입니다. 쉼의 목적은 파견에 있습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유방암이 온몸에 전이된 상태의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줬고 차차 암세포가 사라져 완치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날 때 그러합니다. 암세포는 몸이 허물어진 상태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몸의 설계도와 같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으로 우리 DNA가 회복되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그러면 다시 아이들을 가르칠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기도와 쉼은 아예 처음부터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봉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야 길을 잃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도 나를 파견하는 말씀을 찾아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기도하고 제자들과 사람들이 당신을 찾자 바로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43)라고 하셨습니다. 새벽이 아버지를 만나 힘을 얻고 다시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받으시는 일이 그분에게는 기도였고 휴식이었습니다. 

기도가 휴식이 되면 뒤로 미룰 수 없습니다.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것처럼 먼저 이것을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도록 파견받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이만이 온전히 파견하시는 분 안에서 쉴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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