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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왜 기도의 끝이 항상 결심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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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23 조회수11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왜 기도의 끝이 항상 결심이어야 할까?> 

 

 

 

 복음: 마태오 12,46-50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사실 참 부모님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피만을 물려받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분의 뜻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희생 안에 그분의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한석봉을 당대 가장 유명한 명필이 되게 한 것은 바로 어머니의 희생이었습니다. 그 희생 안에는 ‘뜻’이 존재합니다. 어머니의 희생은 당신의 뜻을 아들에게 강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의 사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형은 동생이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쾌락을 즐기는 데 탕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은 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라도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랐습니다. 


    조선 말기 힘든 시절에 조선 땅에서 승승장구한 조선의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완용입니다. 그는 항상 성공했고 자녀에게 성공하는 법도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강한 나라를 섬기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완용은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 벌써 영어를 배웠던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이 우리와 가까이 지낼 때 친미파의 주동 인물이 되었고, 세상이 변하여 러시아의 발언권이 강해지자 어느새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친러파의 중심인물이 되더니, 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자 이번엔 유창한 일어를 앞세워 친일파의 거두가 되고 이어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합니다. 그 후 우리나라가 일본의 손으로 넘어갈 때 그는 서슴없이 일본인이 되어 그 나라 귀족으로 둔갑했고 마침내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습니다. 그러나 조선 땅에서 당시 가장 성공했던 이완용을 지금 누구도 자랑스럽게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선의 피가 흐르지만, 그는 일본사람이고 러시아 사람이며, 미국 사람입니다. 누구의 뜻을 따르느냐가 어느 민족에 속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저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제가 사제로서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칠 때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가장 예쁘게 보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느님도 그러실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기자가 오상의 비오 신부에게 악마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비오 신부님은 나 자신이 악마라고 말했습니다. 나 자신이란 나의 뜻입니다. 본래 나의 뜻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게 아닙니다. 나의 뜻을 하느님 뜻으로 바꿔나가야 하늘로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참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눈이 먼 것이고 실제로 눈이 뽑혔습니다. 기도의 과정은 다시 하느님이 뜻으로 나를 봉헌하는 데 있습니다. 삼손은 하느님의 뜻을 잃은 것을 뉘우치고 결국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봉헌합니다. 그렇게 세상이 아닌 아버지께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기도입니다. 하느님은 기도의 과정에서 우리 뜻을 당신 뜻으로 감싸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붙잡지 말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위해 그녀를 파견하십니다. 
저도 성체 안에서 예수님을 만난 게 기도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예수님께 무엇을 해 드릴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분은 당신께 붙어있기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성체조배를 하게 되었고 그 뜻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하느님의 뜻으로 파견되지 않으면 내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알고 내 뜻을 그분의 뜻으로 변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세례받으신 분들에게 100일 잔치해 드릴 때 처음엔 적지 않게 놀랍니다. 저는 세례받을 때 청하는 두 가지는 반드시 이루어주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그 소원들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봅니다. 그러면 본당신부로서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신자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받기 이전에는 그런 문제들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지금은 잘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세례라는 은총이 이들을 하느님 뜻에 봉헌하게 한 것입니다. 


    이 일이 매 기도 때마다 일어나야 합니다. 그만큼 땅에서 벗어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가까워집니다. 이것이 하느님 뜻에 대한 구체적인 결정을 위해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의 해답까지 얻기 전에는 그 기도를 마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뜻을 찾기 위한 기도는 며칠, 혹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으로 나의 구체적인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기도는 나에게 어떤 좋은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결국 하느님은 기도로 내가 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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