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우리는 모두 원래는 좋은 땅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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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23 | 조회수5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1-9)”
1) 뒤의 19절에, ‘씨’는 ‘하늘나라에 관한 말’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하늘나라에 관한 말’은 ‘예수님의 복음’, ‘구원에 관한 가르침’ 등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또는 사도들과 선교사들, 또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모든 신앙인들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겉으로만 보면, 씨를 뿌리는 사람이 좋은 땅과 나쁜 땅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로 씨를 뿌리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는 좋은 땅이기 때문에 뿌리는 것이고, 많은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니까 뿌리는 것입니다. <길, 돌밭, 가시덤불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 곳에 씨를 뿌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길, 돌밭, 가시덤불’은 처음에 씨를 뿌릴 때의 땅의 상태가 아니라, 추수 때의 상태를, 즉 심판 때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해석됩니다. 좋은 땅이어서 많은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고 씨를 뿌렸는데, 결과를 보니 열매를 맺기는커녕 뿌려진 씨를 죽이기만 한 나쁜 땅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처음에 씨를 뿌릴 때의 상황에 관한 비유가 아니라, 열매를 거둘 때의 상황에 관한 비유, 즉 복음 선포 활동의 결과에 관한 비유입니다. 처음부터 나쁜 땅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복음을 안 믿고 거부하면서 스스로 나쁜 땅이 되거나, 믿더라도 끝까지 가지 못하거나 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떻든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선포됩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땅이 되거나 나쁜 땅이 되는 것은 각 개인이 스스로 선택하는 일입니다. <산상설교에 있는,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라는 말씀에서, 개들과 돼지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우상숭배와 미신에 빠져서 그렇게 된 사람들입니다.>
2)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은’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ㄱ).”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신 사람이고, 또 당신이 보시니 참 좋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원래는 전부 다 ‘좋은 땅’으로 세상에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죄를 짓거나 죄에 오염되면서 좋지 않은 땅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성인 성녀들은 끝까지 충실하게 노력해서 좋은 땅의 상태를 유지하다가 많은 열매를 맺은 분들입니다. <누구든지 좋은 땅에서 나쁜 땅으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나쁜 땅이 되었더라도 회개하면 좋은 땅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어떻든 하느님의 심판대에 섰을 때, 좋은 땅으로 서는 사람은 좋은 땅인 것이고, 나쁜 땅으로 서는 사람은 나쁜 땅인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도 누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정해져 있는 운명 같은 것은 없습니다.>
3) “말씀이 나를 구원한다.”는 것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은 맞는데,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이라는 ‘씨’가 내 안에서 ‘구원’이라는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면, 신앙인답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고, 회개해야 하고, 하느님 나라의 구원을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의 씨’가 저절로, 또는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또 자기 안에 미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비유의 맨 끝에 있는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라는 말씀은, “알아들었다면,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삶으로 실천하여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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