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아직은 모릅니다. 누가 밀이고 누가 가라지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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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27 | 조회수6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24ㄴ-30).”
1) 여기서 ‘하늘나라’는 종말에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 세상 안에서 건설되고 있는 메시아의 나라, 또는 교회입니다. ‘가라지의 비유’는 이 세상에, 또는 교회에 왜 악인들과 의인들이 섞여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유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말라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하느님께서는 악인의 멸망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악인의 회개와 구원을 바라신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에제 33,11).
2)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라는 말은,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는 동안에” 라는 뜻일 수도 있고, 그냥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악’의 기원과 활동은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즉 ‘신비’ 속에 숨어 있는 일입니다.> 교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비유를 생각하면, 악마는 교회 안까지 침투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됩니다. 이 말에서, 겟세마니에서의 예수님 말씀이 연상됩니다.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태 26,40ㄴ-41).” 죄를 지은 다음에 악마가 유혹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악마 핑계를 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짓입니다. 유혹한 악마는 하느님께서 따로 엄하게 심판하시겠지만,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지은 사람 자신도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실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불가항력에 끌려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완전한 의인들만 모여 있는 완성된 공동체가 아니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서 모두 함께 믿고 함께 회개하면서 구원의 완성을 향해서 함께 가는 공동체입니다. 그 과정에서 악마의 유혹과 압박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람들 사이에 의견 차이와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도 있고, 외부에서 오는 박해와 고난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거나 신앙을 아예 잃어버리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서로 사랑하면서 끝까지 함께 가려고 노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남 탓’ 하지 말고, 우선 먼저 ‘나부터’ 노력해야 합니다.>
3)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는, 산상설교의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 7,1-2).” 어떤 형제가 악인이 아닌데도 함부로 악인이라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단죄한다면, 그런다고 해서 그 형제의 구원이 막히는 것은 아닌데, 그를 판단하고 단죄한 내 죄만 커지게 됩니다. 혹시라도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면서 하신 말씀을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는 용서의 권한에 대해서 사도들에게 다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ㄴ-23).” 이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또는 교회에) 모든 권한을 넘겨주신 말씀들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대행할 수 있도록 사목 직무와 권한을 ‘위임’해 주신 말씀들입니다. 사도들은(교회는) 아무나 마음대로 심판하고 단죄해도 되는 권한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는 직무와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권한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형제를 용서하지 않을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오직 용서할 의무만 있을 뿐입니다.>
4)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는, “혹시 진짜 악인이라고 해도, 회개할 기회를 주어라.”입니다.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라는 말씀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은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경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지금 악인이라도 회개해서 의인이 될 수 있고, 의인이라도 타락해서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될지는 ‘지금은’ 모릅니다. 그러니 남을 판단하지 말고, 나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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