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義로 드러나야” (요한11,19-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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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7-28 | 조회수4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4년 07월 29일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 기념일]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義로 드러나야”
복음(요한11,19-27)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 그녀들의 오빠 라자로가 죽은지 나흘째 되는 날이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 예수님은 육(肉)의 죽음을 막아 주러 오신분이 아니다. 곧 세상의 육을 죽여 다시 하늘의 생명으로 살리시려 오신 구원자(救援者)시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 죽은 이를 살리셨던 그 기적(奇蹟)의 의미, 구원(救援)을 깨닫지 못해 오빠에게 기적을 베풀어 달라는 청(請)이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 물론 마르타의 청(請)과 다른 의미로 말씀하심이다. 어쨌든 믿지 못하는 마르타 이다.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신앙관은 세상의 끝날, 종말 후 부활(復活)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새 계약을 믿는 이에게 죽음은 곧 부활(復活)이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 세상의 죄(罪)를 없애시려 세상의 죗값으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시고 의롭게 하시려 사흗날에 부활하신(로마4,25) 그리스도 예수님을 진리로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사흗날(3, 하늘)로 되살아나고, 살아서는 그리스도의 사흗날의 부활이 주시는 하늘의 의(義), 생명을 미리 산다는 말씀이다. 제사(祭祀)와 윤리(倫理)의 신앙(信仰)은 절대 누리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용서(容恕), 생명(生命), 부활(復活)이다. 곧 죽음은 하늘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부활과 하나’이다. 우리에게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심이다.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세상을 위해 세상에 오신 메시아가 아니다. 자신의 뜻, 소원을 위한 율법주의인 ‘마르타’이기에 못 알아듣고 엉뚱한 답을 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늘나라의 회복이 아닌, 다윗 시대의 영화를 회복시켜 줄,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 시켜줄, 이 세상을 위한 메시아를 믿었고, 고대했다. 곧 세상의 평화, 영광, 생명(건강)을 위해 오신 그 메시아로 알고 답(答)한 것이다. ‘마르타’는 그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답한 것이다. 우리는? 아니다. 곧 사라질, 영원한 어둠에 같히게 할 세상의 평화, 영광에 목숨을 건, 그 노예(奴隸)의 삶에서 건져내시어 하늘의 영원한 평화, 영광,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마르10,45참조)
(1코린15,19)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 구원 받지 못할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1코린15,20)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 요한11장 42절 이후, 예수님께서 죽어 나흘(4)이나 지난 ‘라자로’를 살리신다. 그러나 다시 죽을 라자로다. 육(肉)의 목숨, 건강을 위한 ‘마르타인 우리 독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로 죽으셨고, 의롭게 하시려 사흘(3)날에 부활하신 그 ‘십자가의 복음, 말씀으로만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음을 알아들으라.’ 하심이다.(사도17,28참조)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또한 그렇다. 오늘 그들을 위한 기념일(記念日)이다.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흗날의 죽음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이사1,14)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 육(肉), 그 4의 죽음을 하늘(3)의 죽음이 먹어(품어) 존재함이다.(2코린3,4) 또한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신앙은 마음이 완고해져(마르6,52) 오히려 그리스도를 적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한11,53)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으로 땅(세상)의 것을 위해 의롭게 산 이들이 제사와 윤리를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완성하시고 하늘의 생명을 주시는 그 하늘나라의 의(義)이신 자신들의 구원자를 몰라보고 죽이기로 결의를 한 것이다.
(1코린1,21)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義)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義)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1코린1,18)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느님의 지혜의 말씀이며 인간의 지혜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십다가의 구원의 복음이 저희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본디 7월 29일, 오늘은 성녀 마르타 기념일이었으나,2021년부터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로 변경되었다.(교황청 경신성사성, 2021년 1월 21일 교령) 왜 자꾸 없는 기념일을 보태고 보태는 것일까? 성경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심히 걱정이 된다. "여러분을 선동하는 자들은 차라리 스스로 거세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갈라5,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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