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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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7-29 | 조회수202 | 추천수4 | 반대(0) |
뉴욕엘 며칠 다녀왔습니다. 신문사에 있는 계좌를 정리하려면 제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의 계좌는 닫았고, 다른 하나의 계좌는 결재권을 후임 신부님에게 넘겨 드렸습니다. 인수인계를 하면서 은행 업무도 같이 마무리해야 했는데 깜빡했습니다. 덕분에 뉴욕에서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후임 신부님과 호흡을 잘 맞추고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문사 홈페이지의 변화였습니다. 후임 신부님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돌아오니, 수녀님의 도움으로 청년들이 창고에 ‘벽화’를 그렸습니다. 지난번 창고를 만들면서 어른들이 매주 토요일에 만났습니다. 그렇게 4개월 만나면서 저는 본당 교우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고는 단순히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창고는 친교와 나눔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벽화를 그려보라고 하였습니다. 벽화는 청년들의 마음을 담은 그림이지만, 벽화를 통해서 청년들이 친교와 나눔을 가질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저의 뜻대로 청년들은 벽화를 그리기 위해서 자주 만났고, 재능과 끼를 모아서 아름다운 벽화를 만들어냈습니다.
‘身土不二’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서양의 철학과 학문을 배우면서 분석하고 나누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어쩌면 ‘통합과 통섭’ 속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원리와 기초를 생각하는데 자꾸만 죄가 떠오릅니다. 죄는 부끄럽고, 죄는 멀리해야 하겠지만 우리 삶의 발자국에 함께 따라오는 것입니다. 병은 우리 몸에 깊은 상처를 주지만 우리 마음은 그 병 때문에 오는 ‘근심, 걱정, 두려움’에 더욱 큰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완전하게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체는 음식을 섭취하고 나서 배설물을 남기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입니다. 배설물은 혐오스럽고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배설물은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갖게 됩니다. 굳이 오래 간직할 필요가 없으므로 우리는 에너지로 사용되고 남은 배설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것입니다. 죄란 어쩌면 우리의 몸과 둘이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죄라는 배설물을 남기게 됩니다. 죄는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식은 우리 영혼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죄의식은 2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교만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약함을 거짓으로 감추는 행위입니다. 다른 하나는 열등감입니다. 이 또한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죄인은 회개를 만나면 은총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죄인은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죄인은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주님을 만나서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주님의 길을 충실히 따라갔습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성인도 죄 중에 있었지만 회개하였고 신앙의 별이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도 그랬습니다. 우리들 역시 그렇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밭은 우리의 몸과 같습니다. 밀은 건강한 지체입니다. 가라지는 병들어 아픈 지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양의학에서 하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가라지를 제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동양의학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지켜보면서 몸의 기능을 강화해 나가라고 하십니다. 건강한 지체들이 활력을 얻으면 건강하지 않은 지체들이 치유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전에 감동적인 경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육상경기에서 1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넘어졌습니다. 그 뒤로 오던 선수가 넘어진 선수가 일어나기를 기다렸고 둘은 서로 선을 잡고 결승점에 도달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서 박수 쳤습니다. 넘어진 1등을 뒤로하고 2등으로 오던 선수가 1등이 되었다면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동체에서도 그렇습니다. 여러 단체가 있습니다. 각 단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지체들입니다. 어떤 단체는 열심히 봉사 합니다. 어떤 단체는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지내야 합니다. 잘못이 있는 사람, 단체를 배제하고, 공동체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주변에 부족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잘못을 하는 사람들도 보일 것입니다. 그럴 때 오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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