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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마태오 13, 36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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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29 조회수72 추천수3 반대(0) 신고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13,40)

「교회-순결한 창녀」는 교회론에 관한 책 제목이며, 순결한 창녀라는 표현은 어쩌면 오늘 복음의 좋은 씨와 겨자씨의 비유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봅니다. 밭인 세상의 현실은, 교회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우리 각자의 영혼 안에서도, 좋은 씨와 겨자씨 곧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이 있는 곳에 필연적으로 악도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악은 선에 의하여 완전히 제거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았음을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는 이미 겪었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경험적으로 내가 악을 미워하면서 그 악을 완전히 뿌리 뽑겠다고 결심하고 실행하는 그 순간에, 나의 선의 실행 결심은 이미 독선의 악이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선량한 지킬 박사가 밤이면 괴물인 하이드로 변하는 스티븐슨의 소설은 선악이 별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야누스의 얼굴처럼 이중적이라는 점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선악이 같다고 궤변을 늘어놓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선악이 다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공존하고 있기에 다만 ‘수확 때까지, 종말 때까지’ 우리 가운데 견디어 내며 아빠 하느님께 내어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후반부에선 이런 우리의 마음을 읽은 듯, 사람의 아들에 의한 세상 종말의 때에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게 된다는 희망을 선포합니다. 물론 성서학자들은 이 부분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태오 저자의 해설이지만, 이 해설에는 당대의 그리고 오늘 우리의 바람이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거부와 배척 그리고 박해의 와중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닥칠 악의 위세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마지막 날 단죄하시고 심판하실 사람의 아들에 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 마음에 드는 선을 행하면서 견디어 내려고 분투 노력하였습니다. 어쩌면 초대 교회의 신자들처럼, 오늘 우리가 직면한 악의 실체를 직시하면서 어떤 대응과 실천을 해야 하는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악은 결코 악으로 이겨내지 못하고 선 하나만이 가능성이 있음을 믿는다면 선하고 슬기로운 우리는 지난 역사의 위기에 때마다 함께 힘을 모아 굳건히 어려움을 이겨낸 것처럼 작금의 위기가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극복해 나가도록 합시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내” (13,41)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질 것이며” (13,42) 의인은 “해처럼 빛날 것”(13, 43)임을 믿고 살아갑시다. ‘좋은 씨’와 ‘가라지’는 이 세상에서 한때 함께 공존하겠지만, 마지막 날이 되면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고, 가라지는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릴 것이다.”(13,30)라는 말씀은 꼭 실현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은 실현될 것입니다. 악은 결코 승리할 수 없으며, 하늘나라는 악을 통해서 결코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화해와 치유재단’ 해산과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의 배상 판결에 따른 보복 차원에서 시작했던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재원과 다른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강제 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7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운데 한·일 정부가 사전에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이 소식은 의식 있는 이들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고 분노할 내용입니다. 2015년 7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가 있었던 군함도(하시마) 등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당시엔 일본 정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을 했다‘라고 밝히는 등 강제성을 명확히 한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합의한 사안까지 무시하고 반성할 줄 모르고 오히려 왜곡해서 발표한 것을 보면서, 이미 돌아가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밤낮으로 그치지 않을 그 가족들의 눈에서 눈물을 봅니다. 

오래 전 「녹두 꽃」이란 드라마의 ‘우금치 전투’ 장면에서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서 무참하게 죽은 수많은 이들의 허망한 죽음을 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말이지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야비한 방법으로 또다시 짓밟으려는 일본 자민당 정권과 극우파에 대한 저의 솔직한 심정에서, 구전 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보냅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너 뭣하러 나왔느냐 솔잎 댓잎 푸릇푸릇 여름인 줄 알았더니 백설이 덜덜 엄동설한이 되었구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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