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가라지보다 못한 인생이 되어서야 / 연중 제 17주간 화요일(마태 13,36-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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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7-29 | 조회수6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가라지보다 못한 인생이 되어서야 / 연중 제 17주간 화요일(마태 13,36-43) 예수님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밭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평화를 구하는 법을 세세히 일러 주셨다. 사람의 아들이 이 세상에 하늘 나라의 자녀들을 만드셨는데 악마들이 악한 자의 자녀들도 함께 만드셨다나. 소위 좋은 씨만 뿌렸다지만 가라지도 함께 있다는 거다. 그 흔한 지나가는 말로 ‘좋은 분’ 속에 ‘좋지 않은 놈’도 쾌나 있는 경우이리라. 누가 좋은 이고 누가 가라지 같은 모습을 지녔는지는 ‘세상 끝 날’에는 드러나겠지만, 모든 이가 그걸 궁금해 한다. 그렇지만 세상 종말에는 사람의 아들이 천사들을 보내 가라지를 거둬 태우듯이, 남에게 죄짓게 하는 이들과 불의를 저지른 자들은 몽땅 모아서 불구덩이에 던져 버린단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불며 이를 갈 것이라나. 그렇지만 의인들은 태워 없어져버릴 가라지와는 달리 아버지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게다. 이건 분명히 그날에 일어날 일이고 우린 그걸 믿는 이다. 이렇게 우리는 가라지 같은 악인이 없는 세상을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자신의 삶의 모습조차도 잘 모르는 게 대부분이다. 우리가 가라지마냥 악인인지, 아니면 선인인지 잘 구별해 내지 못하듯이, 살다보면 어느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잘 모르면서 지낸다. 그러기에 추수 때 가라지가 아닌 하느님 천사들이 거두어들일 밀알이 되도록 매순간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그분을 떠나지 않고 언제나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만 할 게다. 간혹 직장 생활에서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애가 여기에 들어왔을까?’라는 생각을 서로서로 갖게 될 경우가 있으리라. 온종일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실망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다가 경력이 올라갈수록 자신도 그들처럼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게다. 곧 처음에는 옳은 직장 생활을 하기에는 합당하지 않은 ‘가라지’라고 서로 비판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부족한 자신을 ‘밀’로 바꾸어 주시는 하느님을 꼭 체험하는 경우가 허다할 터이니까. 살다 보면, ‘가라지’라고 비판하고픈 이가 적지 않다. 죄란 사랑을 거스르는 거고 남을 죄짓게 한다는 것은 그에게서 ‘사랑의 마음’을 빼앗는 행위일 게다. 세상에서 봉사하는 마음을 없게 만드는 것이리라. 이보다 더 ‘어두운 행동’이 있을지? 이웃을 악하게 만드는 가라지보다 더 못한 삶의 모습이다. 따라서 모든 ‘인연’을 선하게 만들도록 애써야만 한다. 그러면 천사가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생각을 품는다면, 이보다 더 ‘밝은 행동’이 있을지? ‘사랑의 마음’을 지니면 ‘좋은 이’ 되고, 비뚤어진 마음 지니면, ‘가라지보다 못한 이’ 분명 될 게다. 예수님께서는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며 종말 때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이 모두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이라나. 그런데 이는 남 이야기같이 들리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 가운데 죄 없어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을 것이기에. 참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중개로 그분과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되었다는 거다. 이렇게 비록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필요한 곳에 딱 맞는 이들을 보내주신다. 그분께서는 늘 세상이라는 밭에 그처럼 좋은 씨를 뿌리신다. 따라서 그 씨앗 하나하나 잘 키운 농부는 칭송받아 마땅하리라.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공동체를 정말 잘 아껴 그분 뜻 따라 키우자. 땀 흘린 그 보람 세상 끝날 그날에는 정녕 칭송받아 마땅할게다. 아니 응당 그러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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