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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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7-31 | 조회수5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 마태 13,44-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오늘 복음은 ‘하늘나라’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려면 어떤 마음 자세를 지니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비유를 통해 설명하시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행복을 제대로, 온전히 누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가진 것을 다 팔아야(처분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내가 하느님을 위해,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가진 것을 그리고 나 자신을 얼마나 내어드릴 수 있는가에 따라, 내가 그분과 함께 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행복 또한 커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되물을 것입니다. 안그래도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많아 바쁘고 정신이 없는데,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만해도 팍팍해서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하느님께 많은 것을 내어드릴 수 있겠느냐고 말이지요. 그러길 바라시는건 너무 무리한 요구처럼 느껴져 버겁다고도 하십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하느님과 그분 뜻을 위해 내 것을 그리고 나 자신을 얼마나 내어드리는가에 따라 내가 그분과 함께 누리는 기쁨 또한 커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나서 남는 시간을, 쓰고 싶은 거 다 쓰고 나서 남는 재물을, 그마저도 마지못해 내어드린다면, 나에게 하느님이 ‘겨우’ 그 정도 존재밖에 안된다면, 그분과 함께 하는 기쁨도 딱 그만큼 밖에 안되는건 당연한 일인 겁니다. 내가 시간과 재물 그리고 노력을 기꺼이 투자하는 만큼 기쁨과 보람이 커지는 건 무슨 일을 하든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왜 세상의 일을 할 때에는 그런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그렇게 하는 걸 억울하게 생각할까요? 왜 신앙생활은 최소한의 시간과 재물을 투자하여 최대의 효과를 누리는걸 당연하게 생각할까요?
이 세상에서는 값 비싼 명품일수록 더 잘 팔립니다. 물론 그 물건이 지닌 가치와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제품의 값이 비싼만큼 비싼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고가의 명품에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하는 건, 그것을 얻기 위해 내가 지불한 가치가 곧 그 물건의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느님을, 그리고 신앙생활을 바라보아야 그분과 함께하는 삶이 지닌 참된 가치를 알아보고 누리게 된다고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알아보고 누리기 위한 노력과 수고를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농부가 밭에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은 땅을 파서 돌을 골라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주 상인이 최고의 진주를 찾은 것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발품을 파는 고생을 기꺼이 감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귀한 보물을 소유하게 된 공통적인 이유는 그것을 얻기 위해 자기 것을 다 내어놓은 용기와 결단 덕분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내가 지닌 힘과 능력을 무언가를 얻기 위해 소진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사라질 세상의 헛된 것들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말고, 아무리 애를 써도 온전히 차오르지 않는 ‘깨진 독’에 내 노력과 수고를 쏟아붓는 헛고생을 하지 말고 기왕이면 가장 좋은 것을, 나의 삶 전체를 가장 의미있고 보람차며 기쁘게 만드는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그 귀한 선물은 오직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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