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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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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1 조회수164 추천수10 반대(0) 신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내 한평생, 나는 주님을 찬양하리라.”(시편146,1ㄴ-2ㄱ)

 

7.21일 사후, 이렇게 크고 깊고 길게 울림을 준, 향기로 남아 있는 분은 처음일 것입니다. 향년(享年) 73세로 사망했다는 향년이란 말마디도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살아서 누린 나이 답게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누리었고 겪어낸 분입니다. 신자아닌 경우 유가족이 청하지 않았는데 가톨릭교회 주교가 이렇게 각별히 장례미사에 추모강론을 한 경우도 사상 초유의 사건일 것입니다. 그 까닭은 믿는 누구보다 내용적으로 충실히 주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참 아름다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후 10일이 지났는데도 신문에서는 릴레이 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미담성 기사입니다. 축생(畜生;사람답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의 비유)의 시대, 비로소 인생이, 사람 얼굴을 한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흡사 불교의 윤회설을 생각할 정도로 명칭만 사람이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짐승같은 모습들도 얼마나 많은지요? 길다 싶지만 어제 기사도 소개합니다.

 

“작가 서해성은 그의 넋이 너무 아름다워서 영전에 꽃을 올리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하늘에서만 빛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마을에 불이켜지면 별들의 노랫소리를 담아 내려올 것이다. 모든 잘난 것들이 사라진 마을에는 또 다른 김민기가 살고 있을 것이다. 주막을 발견하면 어떤 속기(俗氣)도 묻어있지 않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우리 삶도 떠내려 가고 있다. 노을 뒤편의 어둠이 보인다. 무엇을 받들고 무엇을 버려야 김민기 마을에 들 수 있을까.”

 

오늘은 8월 첫날이자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창립자인 참 아름다운 사람,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그와 수도회의 모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라.”(루카4,18) 였습니다. 그는 18세기 한생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프랑스 출신의 착한목자 주교학자였습니다. 그는 엄한 윤리를 강조한 얀세니즘의 흐름 안에서도 고해소에서는 자비와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의 양심을 매우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며 다음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나쁜 악습에 깊이 빠져들어 있을수록 그만큼 더 부드럽고 다정스레 그에게 다가가야 한다. 고해신부는 죄가 남긴 수많은 상처들을 돌봐야 한다. 그는 풍부한 사랑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꿀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제가 이용하는 일력의 8월 주제어는 노자에 나오는 ‘독립불개(獨立不改;흔들리지 않은 마음은 단단한 몸가짐에서 나온다)라는 말마디로 우리 삶의 지침이 됩니다. 이어 8월1일 옛 어른의 말씀 역시 좋은 삶의 지침이 됩니다.

 

“생각과 행동 사이만큼 먼 것은 없다. 공부는 그 먼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다.”<다산> 

이런 공부가 평생학인의 참된 공부요, 우리의 전삶을 망라한 삶자체가 공부이겠습니다.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붙어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온다.”<순자>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언젠가 갑작스런 선종이 아니라 ‘군자의 학문’처럼 잘 살았을 때 잘 죽은 선종의 죽음입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물음은 저절로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에 지결됩니다.

 

오늘 복음 역시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오늘로써 마태복음 13장, 하늘 나라의 비유들도 끝납니다. 엊그제 복음 ‘가라지 비유의 풀이’처럼, 오늘 그물의 비유 역시 최후의 심판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런 심판을, 구체적으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 때 적당한 긴장에 아름다운 하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조언은 늘 들어도 반갑습니다. 해설이 없어질 정도로 단숨에 읽혀지는 오늘 복음 전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타고난 ‘이야기꾼(storyteller)’입니다.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회개하라 연장되는 날입니다. 회개도 때가 있습니다. 종말의 죽음에 임박해서는 너무 늦습니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손오공처럼, 모든 시간이, 모든 사람이 하느님 수중에, 하느님 그물망에 있습니다. 그물을 들어 올리는 날이 죽음의 날입니다. 의인의 삶이었는지 혹은 악인의 삶이었는지 확연히 구분될 것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이런 종말심판에 대한 믿음이 의인의 삶을 선택해 살게 합니다. 어제 지인의 언급을 잊지 못합니다.

 

“불공정과 불의가 만연된 위정자들 집단입니다.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불공정과 불의가 거짓이 일상화되어 갑니다. 국민들이 처음엔 놀라며 분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 그러려니 하고 마비 중독되어 가는 것이, 서서히 사회 전체가, 나라 전체가, 소리없이 썩어가는 것이, 망해가는 현실이 두렵습니다. 늑대 소년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늑대가 나타났다 거짓말에 동네 사람들이 나섰지만 거짓말에 속은 사람들은 세 번째 정말 나타났을 때는 아무리 외쳐도 거짓말인줄 알고 나타나지 않아 늑대에 먹혔다는 일화입니다. 무신불립, 한번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은 요원합니다.”

 

오늘 복음의 그물의 비유를 대할 때 마다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疎而不失), 천지 자연의 법칙은 광대하여 엉성한 듯 보이지만, 악인에게 벌을 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느님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물망을 들어 올릴 때가 죽음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그물의 비유’나 제1독서 이사야서의 ‘옹기장이의 비유’가 흡사합니다. 옹기장이 하느님의 손안에 있는 옹기그릇과 같은 우리의 존재임을 깨달아 겸손히 그분 뜻에 따라 살때 아름다운 삶에 죽음일 것입니다. 성가 49장 옹기장이를 조용히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옹기장이 손에든 진흙과 같이 

 내게 있는 모든 것 주님 손에서,

 님뜻 따라 나의 삶이 빚어지리니, 

 가르치심 마음새겨 들으렵니다.”

 

진흙하니 어제 읽은 감동적인 글도 생각납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세3,19) 구절에 대한 풀이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살아라, 죽어서 흙될 생각말고 살아서 너는 흙으로 살아라. 온갖 썩는 것, 더러운 것, 말없이 품열고 받아들여 오래 견디는 참사랑, 모든 것 삭이는 세월에 묻었다가 온갖 좋은 것 토해내어 마침내 열매 맺도록 다시 말없이 버텨주는 흙으로, 흙으로 살아라. 너는 흙이니 오오, 거룩한 흙으로 살아라.”

 

흙의 영성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흙에서 나온 흙처럼 겸손한 참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흙(humus)에 어원을 둔 겸손(humilitas)이요 사람(homo)이요, 이에 가장 가까웠던 분이 예수님이자, 앞서 소개한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은 우리 모두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주님은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모두에게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너희들은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지금까지 하늘 나라 비유들을 다 깨달았는지 물으시며 각오를 새로이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집주인처럼 성경의 곳간에서 지혜로이 새것도 옛것도 꺼내면서 기존관념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시편146,5).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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