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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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8-01 | 조회수232 | 추천수5 | 반대(0) |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이 있습니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들고 주인을 쫓아낸다는 뜻입니다. ‘굴러온 돌이 박혀있는 돌을 빼난다.’는 말도 비슷하고, ‘방귀뀐 사람이 오히려 성을 낸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사실 카인은 시기심 때문에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수산나를 욕보이려고 했던 노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틀어지자 오히려 수산나를 거짓으로 고발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그런 노인들의 거짓과 욕망을 들추어냈습니다. 40억년이 넘는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 등장한 시간은 30만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긴 지구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아주 작은 시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적반하장으로 지구에 사는 많은 생명을 못 살게 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시간 머물다 가면서 마치 주인처럼 지구의 생태계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적반하장의 인간을 기다려 주시고, 용서해 주시지만, 감정이 없는 자연은 임계점이 넘게 되면 무섭게 되갚아 줄 것입니다. 배은망덕(背恩亡德)이란 말도 있습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오히려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 달라고 한다.’는 말도 비슷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는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려는 인간의 배은망덕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반석이라고 하시면서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 사도는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측은하게 여기셨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눈이 먼 사람은 뜨게 해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는 걷게 해 주셨습니다. 나병환자는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랬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뜻을 찾는다면 그 역시 배은망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징과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문, 예수님의 학력, 예수님의 재산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위선을 비판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시메온과 한나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매일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신앙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고,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시다. 바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전해진 복음이다.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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