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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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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3 조회수13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4년 8월 3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미국의 유치원생이 쓴 시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시는 이렇습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까 좋다.

바둑이는 나와 놀아주니까 좋다.

냉장고는 먹을 것이 많이 있으니까 좋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끝났을까요?

이 마지막 문장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문장은 ‘우리집에 왜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합니다.

나쁜 직장생활로 집에 밤늦게 들어오고

그래서 아빠 만날 시간이

아이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빠’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이 유치원생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또 주님께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의미도 모르고 자기 편한 대로

자기 욕심과 이기심만을 채우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아오스딩 성인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 없는 착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조금이라도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생활이 칭송받을 만한 때에도

용서받아야 할 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희망이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죄에 무관심하면 할수록

타인의 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 넣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잘못을 고쳐 줄

마음으로 그 잘못을 찾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비판하려고 찾는 것입니다.

그들은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릴 줄 모르고 타인의

잘못을 곧잘 나무랍니다.”

이러한 겸손을 갖추고 있어야

의미 있는 존재로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보다는 나를 드러내고

또 세상에 나를 높이는 데에만

온 힘을 쏟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헤로데 영주 역시 자기를 드러내고

높이는 데만 온 힘을 쏟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자기 의미를 찾지 못했고,

그래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대신 헤로디아 딸의 춤값으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넘겨줍니다.

'그 결과는 스스로에게도 비참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라고 말합니다. 두 발 뻗고

잠잘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해서는 안 될 일, 자기 존재 의미를

깎아버리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존재 의미는 주님의 일을

했을 때 환하게 드러납니다.

즉, 사랑의 삶을 살았을 때만 가능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이 세상 안에서

자신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하느님이 즐겨 하시는 것을

여러분의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 아오스딩)

사진설명: 피터 폴 루벤스의 헤로데의 축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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